[시론]황민영/타율개혁 부른 농협

  • 입력 1999년 3월 1일 20시 04분


감사원 감사결과에서 드러난 농협의 적폐는 농협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사람으로서도 충격적이다. 전국 1천3백32개 회원조합 중 절반에 가까운 6백여개가 자본잠식 상태이고 한보 진로 등 대기업에 지원한 자금 6천여억원이 회수가 불투명한 상태라고 한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직접 농협의 부조리와 비능률을 시정하라고 지시하고 나섰으니 이번에는 농협 개혁이 유야무야될 것 같지는 않다. 검찰도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한보 진로 등 부실대기업에 대한 부실 대출에는 정치권까지 낀 부패 커넥션이 작용했다는 이야기도 농협 주변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 철저한 구조조정 필요

감사원 감사결과는 농협이 농민들을 위한 농업금융기관이라는 고유 목적에서 크게 벗어나 방만한 운영을 해왔고 도덕적 해이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보여주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농업과 국민경제에 미치는 역할이 지대한 농협의 개혁이 중요한 과제로 다뤄졌다. 지난 문민정부에서도 대통령 자문기구로 설치된 농어촌발전위원회가 중앙회의 신용 및 경제사업의 단계적 분리 등 개혁안을 건의한 바 있다.

국민의 정부 역시 협동조합 개혁을 국정 1백대과제에 포함시켜 지난해 농림부장관 자문기구로 협동조합개혁위원회를 설치하는 등 협동조합 개혁에 의욕을 보였다. 그러나 정부는 아직까지 농수축협과 인삼협의 통폐합 등 개혁안을 내놓지 못하고 지지부진하다. 이런 저런 사정을 내세워 아직까지 최종 개혁안을 확정하지 못하고 “개혁은 물건너 간 것이 아닌가”하는 말이 나오던 시점에 이번 감사원 발표가 나온 것이다.

축협 감사결과도 곧 발표될 예정이라는 점에 비추어 농협과 축협에 대한 감사는 기득권에 집착해 개혁에 저항하는 4개 협동조합에 대한 채찍질이라고 해석해 볼 수 있다. 결국 자율개혁을 못하고 타율개혁에 내맡겨진 꼴이다.

농협 중앙회 조직은 너무 비대하다. 조합 규모가 영세해 농민들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한데 비해 중앙회는 대도시를 중심으로 신용사업을 크게 확대했다. 농수축협이 공히 지도사업 경제사업 신용사업을 경쟁적으로 벌여 규모의 경제를 이루지 못하고 고비용 저효율을 초래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협동조합의 개혁은 보다 철저한 구조개혁을 통해 협동조합을 농민조합원 회원조합 중심으로 체제를 개편해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 비대한 중앙회의 기능을 과감히 회원조합에 넘겨 조합원 회원조합 중심의 조직으로 개편하고 상향식 조직체계를 확립해야 한다.

그동안 주무부처로서 총괄적인 감독권을 행사해온 농림부나 신용사업 부문을 감독한 금융감독원 모두 이번 결과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농협은 기본적으로 농민의 조직이기 때문에 일반 금융기관과 분명한 차별화를 해 생산자금융 협동조합금융의 장점을 살려야 한다. 물론 조합의 경영부실을 방조한 중앙회의 자체감사 기능도 총체적으로 개혁돼야 한다.

금융시장의 개방과 자율화 시기에 생산자금융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우선 신용사업의 부실요인을 청산해야 한다. 또 저렴한 비용과 금리로 종합지도 금융을 제공할 수 있도록 중앙회의 신용 및 경제사업을 분리해 전문화하고 농산물의 생산 판매 가공 등 경제사업을 중심으로 개편돼야 한다.

◇ 「농민의 조직」 변신을

이번 감사원 감사를 계기로 농협을 개혁해야 하는 이유가 거듭 확인됐다. 이번 기회에 농민의 자주적인 조직으로 새로 태어나야 한다. 조합원에 의한 협동조합 운영, 회원조합에 의한 중앙회 운영이라는 대원칙이 아직까지 내실있게 정착되지 못한데서 농협의 문제가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직 사업 인력의 구조조정을 통해 농업금융기관으로서 효율화 전문화를 꾀하면서 협동조합 고유의 기능인 지도 경제사업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혁하는 길만이 농민도 살고 협동조합도 사는 길이다.

아무리 통증이 심하더라도 확실한 개복수술을 통해 농협이 진정으로 농산물과 금융 및 유통시장의 개방에 대응해 농민을 이끌고 나가는 조직으로 환골탈태되기를 기대해본다.

황민영<한국협동조합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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