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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9년 2월 8일 18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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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철장 속에 있는 작은 철망에서 죄수는 면회자와 번쩍이는 이중의 철망을 사이에 두고 이야기해야 합니다. 그때 일주일 단식을 하고 나니 간수장이 면회실로 나를 데려갔습니다. 어두워서 나는 중심을 잡으려고 양 손을 짚고 철창에 매달렸습니다. 마치 동물원에 있는 원숭이처럼 말입니다. 면회실의 어두운 구석에서 오빠는 얼굴을 바짝 들이 밀고 나를 찾았습니다. 로자, 어디 있어? 하고 그는 나를 계속 불렀습니다. 눈물이 안경과 뒤범벅이 된 채로 자꾸 눈을 훔치며 나를 불렀습니다.
아, 그가 오히려 나를 면회해 주었으면 싶을 때가 있다. 그래서 그가 정성스럽게 유리 조각을 붙여 둔 먼지로 흐려진 창경을 닦고 나무 사이로 내다뵈는 오솔길 아래 과수원 길을 들여다 본다.
어느 한 순간도 무장을 풀지않고 명예로운 상처가 아물 날이 없이 보다 확고한 신념으로 살았더라면! 한 번밖에 추방당하지 못하고 인간적 두려움에 세월을 낭비하고 살아온 날들이 후회스럽구나 단 한 번이라도 보다 용감하게 살았더라면!
로자는 이 시가 자신의 비문이 되기를 바란다고 편지에 쓴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뒤에 그녀는 자신을 비웃듯이 고쳐서 썼다.
마틸드, 너는 나를 심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지? 그러면 아마 웃음이 나올 거야. 나의 무덤 위에는 거짓말이 새겨져서는 안돼. 나의 무덤에는 ‘지지배배’라고 두 마디만 쓰면 될거야. 이건 작은 새가 지저귀는 소리야. 나는 그 새가 지금 이리로 날아오고 있기 때문에 그 소리에 익숙해 있어. 그 소리는 항상 또렷하고 예쁘고 비늘처럼 빛을 낸단다. 한번 생각해 보렴. 언젠가 ‘지지배배’하고 조그맣게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올 거야. 그게 무슨 소린지 아니? 그건 살랑살랑 첫 봄이 오는 소리야. 눈과 서리가 내리고 고독할 때에도 우리들 작은 새와 나는 봄이 올 것을 믿지. 만약 내가 기다리다 못해 봄이 오는 걸 보지 못하고 죽는다면, 나의 무덤에는 ‘지지배배’라고만 쓸 것을 넌 잊어서는 안돼.
<글: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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