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영석/디지털시대의 통합방송법안

  • 입력 1998년 12월 7일 19시 26분


이번 정기국회에서 처리될 예정이던 통합방송법안이 내년 초의 임시국회로 연기되자 그 배경을 두고 온갖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지난 몇년 동안 첨예한 이해대립으로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끌어왔던 안건이니만큼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정부 여당은 제대로 된 법을 만들기 위해서는 좀더 시간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반면 일부에서는 정부의 방송장악 의도라고 반발한다.

그러나 어느 쪽의 주장이 옳든 간에 또다시 해묵은 논쟁에 휘말려 세월을 소비하기에는 방송을 포함한 미디어 환경이 너무나 급변하고 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 정보통신산업 승부처 ▼

세계의 방송환경은 그야말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 디지털기술의 본격적인 도입은 기존의 방송 패러다임을 송두리째 변환시키고 있다. 방송의 디지털화는 단순히 프로그램의 제작과 송출, 수신의 방식을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방식으로 변환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전파’라고 하는 가장 보편적인 전송방식과 ‘디지털 수상기’라고 하는 가장 첨단의 다기능 정보 단말기가 결합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디지털 방송은 기존 미디어들이 제공하고 있는 서비스는 물론이고 새롭게 등장할 다양한 미디어의 서비스까지 통합적으로 제공해 주는 차세대 멀티미디어 서비스의 핵심으로 탈바꿈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영국의 BBC방송이 디지털 방송을 시작하였고 미국도 올해부터 시험방송을 실시하고 있다.

서구 대부분의 나라가 금년 혹은 내년부터 디지털 방송을 실시할 예정이며 향후 10년 이내에 모든 방송을 디지털 방송으로 대치할 계획이다.

지난 한세기 동안 산업사회를 주도해 왔던 서구의 선진국들이 이렇듯 발빠르게 움직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필이면 그동안 사양산업으로 치부되어 왔던 공중파 방송의 디지털화에 갑작스럽게 신경을 쓰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우리는 음미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서구의 선진국들에서는 지난 수년 동안 멀티미디어의 최종적 서비스의 형태를 PC를 기반으로 할 것인지, 아니면 텔레비전을 기반으로 할 것인지를 두고 많은 논란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들어 디지털 지상파 방송도입계획을 추진하게 되면서 이들 국가는 텔레비전을 기반으로 한 멀티미디어 서비스의 방향으로 정책의 줄거리를 잡아가고 있다.

그것은 지상파 텔레비전이 이용자에게 친숙하고 사용이 간편할 뿐만 아니라 접근이 용이하다는 장점을 이용한 전략이다. 지상파 텔레비전을 디지털화해 각종 멀티미디어 정보서비스를 다수의 수용자에게 저렴한 비용으로 제공함으로써 국가의 정보산업기반을 앞당겨 정착시키겠다는 고도의 계산이 깔려있는 것이다.

디지털 방송의 정착화는 단순히 방송부문만의 발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방송서비스 정보서비스 통신서비스 전반에 걸쳐 고도의 유기적인 통합과 발전이 이루어짐을 의미한다. 물론 이러한 유기적 통합은 이를 뒷받침하는 반도체산업 정보통신기반산업 정보통신단말기산업 콘텐츠산업과 같은 정보통신산업 전반의 발전을 전제로 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외국의 기업과 정부들이 방송의 디지털화에 앞다투어 투자할 뿐만 아니라 정책 입안자들은 그런 환경을 조성해주기 위하여 모든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이미 외국의 방송산업들은 80년대 중반 이후 새로운 환경변화에 적응하기 위하여 꾸준히 구조조정을 시행하며 경쟁력을 배양시켜 왔다.

특히 90년대 들어서는 세칭 시너지 효과를 높인다는 명분으로 서로 다른 매체산업간의 합병 및 인수를 허용하였을 뿐만 아니라 분야가 다른 통신 및 컴퓨터 업종들과의 제휴도 자유롭게 허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 과감-신속한 개혁을 ▼

이에 비하여 우리의 경우는 미디어 관련 법규들이 너무 규제일변도 중심이고 그나마 정책 주무부서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법규의 내용 또한 디지털 방송의 환경변화를 소화시키기에는 역부족이다.

따라서 이번의 통합방송법안은 방송개념의 혁명적 변화만큼이나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막강한 외국의 미디어 기업군에 대항하여 우리 방송산업이 살아남기 위해서도 그렇고 21세기 디지털 산업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도 과감하면서도 신속한 개혁이 필요하다.

김영석(연세대교수·신문방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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