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피플]LG화학 성재갑 부회장

입력 1998-11-27 19:24수정 2009-09-24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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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 동안 직장생활을 하면서 한번도 스스로 월급자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외국기업들이 가장 ‘군침’을 흘리는 국내 기업중 하나인 LG화학의 성재갑(成在甲·60)부회장. 대그룹 전문경영인 중에선 드물게 지방대(화공학과)출신이면서도 그룹의 모태기업을 94년부터 무리없이 이끌고 있다. ‘핵심 사업부문의 매각도 스스로 결정할 만큼’ 구본무(具本茂)회장의 신임이 두텁다.

유화업계에서는 LG화학이 최근 카본블랙 사업부문을 독일에 매각한 것을 두고 ‘성부회장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평가한다. 96년 여름 성부회장은 미국 유럽출장 중 큰 충격을 받았다. 세계 유화경기의 부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선진업체들은 엄청난 수익을 올리고 있었던 것. 반면 범용(汎用)품 위주의 한국 유화산업은 공멸의 위기에 빠져있었다. 귀국 직후 임원회의를 소집한 성부회장은 “이대로 가다간 LG화학은 망한다”며 직(職)을 걸고 기업체질 변화(TA)에 나설 것을 선언했다. 수익성을 강조하는 TA가 정착되면서 ABS수지 등 5개 분야에서 ‘월드베스트’에 오른 것으로 유화업계는 평가한다.

성부회장의 그룹내 별명은 ‘불도저’. LG석유화학 사장시절 산을 헐고 짓도록 설계된 나프타분해센터를 바다를 매립해 지으면서 공기(工期)를 2년 단축해 얻은 별명이다.

이사시절인 80년 5월 매년 40억원대 적자를 내던 ‘플라스틱 2사업부’를 2년만에 흑자로 돌려놓은 일화도 유명하다. 당시 그는 바닥재업체인 미국의 암스트롱사가 기술이전을 거부하자 청주공장과 서울역 본사를 날마다 오가며 상품개발에 매달려 공전의 히트를 친 ‘럭스트롱’을 개발해냈다.

성부회장의 고속승진은 ‘결코 8시 이후 출근해본 적이 없다’는 본인의 근면성을 구자경(具滋暻)명예회장이 눈여겨 본 때문. 입사후 첫 임지인 부산공장에서 구자경 당시 전무를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구명예회장은 “무슨 일을 시켜도 잘할 사람”이라며 그를 서울본사로 끌어올렸다.

부회장까지 승진하는 동안 그룹내 각종 최단 승진기록을 갈아치우면서 자연스레 국내 화학산업을 대표하는 전문경영인으로 인정받게 됐다.

〈박래정기자〉eco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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