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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8년 11월 27일 19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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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렵 두환과 소희는 신림동에 있는 한 2층집의 반지하에 살고 있었다. 꼬치집으로 진출하게 된 전단계로서 포장마차를 하고 있을 때였다. 두환은 매일 저녁에 나가 밤늦게 돌아왔으므로 같은 집에 사는 사람들을 잘 알지 못했다. 1층에는 주인이 살고 2층에 젊은 부부가 세들어 산다는 정도밖에 몰랐다.
그러던 중 한번은 집 앞에서 술이 취해 토하고 있는 젊은이를 보았다. 등을 두드려주니 ‘고무맙스므니다’라고 말했다. 그것은 지금까지 두환이 들어본 수많은 혀꼬부라진 소리 가운데에서 가장 이국적인 억양이었다. 2층 사는 그 젊은이는 알고 보니 재일교포 대학원생이었다.
대학원생은 이따금 두환의 포장마차에 들렀다. 혼자 올 때도 있었고 친구 두엇과 어울려 오기도 했는데, 술이 약한 모양으로 몇 잔 마셨다 하면 고추장 종지 옆에 뺨을 대고 곯아떨어지는 게 일이었다. 친구들도 얌전한 사람인 듯했다. 소주 한 병에 닭발 예닐곱 켤레를 뜯는 동안 자기 과에서 가장 가슴이 큰 여학생은 누구이고 엉덩이가 가장 처진 여학생은 또 누구라는 둥 이번 시험만 끝나면 보길도로 놀러 가자는 둥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다가 자리에서 일어나곤 했다.
어느날 보안사 요원들이 두환을 찾아왔다. 여쭤볼 게 있어서 그러는데 같이 좀 가주시죠. 그들의 말씨는 정중했다. 모처럼 초저녁부터 손님이 많은 날이었으므로 두환은 성가신 듯한 표정을 지었다. 잠깐이면 됩니다. 두환은 앞치마를 벗으며 거물처럼 대꾸했다. 알았소.
빙고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말투부터 바꿨다. 들어가! 거친 반말이었다. 그들이 보리밭으로 도망친 돼지처럼 몰아대는 바람에 두환은 넘어질 듯이 방안으로 들어갔다. 4평이나 5평쯤 될까. 있는 것이라고는 철제 책상과 의자 하나뿐이었다. 그리고 벽과 천장, 바닥 모두에 빨간 페인트가 칠해져 있었다. 그들은 8절지 종이뭉치과 볼펜을 주고는 재일교포 대학원생과 언제 어디에서 무슨 얘기를 했는지 모조리 쓰라고 말했다.
대학원생과 얘기랄 것을 나눠본 적이 없는 두환은 막막하기만 했다. 그보다 더 난감한 것은 도무지 무슨 긴 글을 써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학생 때는 반성문과 각서를, 그 후로는 영수증과 외상거래 명세표 따위의 실용문을 쓸 때 말고는 그는 도대체가 펜이라는 걸 잡아본 기억이 없었다. 그는 빨간 방 안에 혼자 남겨졌다. 울고 싶은 마음으로 펜을 들 수밖에 없었다.
어느날 대학원생은 안주로 처음에 곰장어를 시켰다가 요즘 주머니 사정이 안 좋다며 그냥 오뎅 국물만 달라고 했다, 일본에 살 때 한국인이라고 집단폭행을 당했는데 그때 자기를 구해준 선배가 있었다, 그 선배 말이 한국에 가면 제주도 구경은 꼭 하라고 하더라, 언젠가는 술에 취해 엎드려 자다가 부시시 일어나더니 ‘이거 왜 이리 춥지? 한국은 너무 추워, 봄은 언제 오나’라고 했다… 두환은 국수 열 그릇은 말 수 있을 만큼 많은 땀을 흘린 뒤 겨우 두 장을 채웠다. 더 이상은 짜낼 이야기가 없었다. 그나마 글씨를 크게 쓴 것은 그래도 자신이 머리는 제법 돌아간다는 얘기였다.
<글:은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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