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며 생각하며]김영미/새내기 女경관의 보람과 시련

  • 입력 1998년 11월 19일 19시 16분


난 경찰 새내기다. 올 3월1일 경위로 임용되어 4월10일이래 첫 보직으로 파출소장 근무를 하고 있다. 현재 나는 마포구 아현2동과 3동의 치안을 책임지고 있는 아현2파출소장이다. 74년생이고 여성이다.

여성 파출소장이어서인지 주변의 관심이 남다르다. 호기심 어린 질문도 많이 받는다. 단지 파출소장으로서의 애로에 관한 것이 아니라 남성중심적인 조직에서, 술집도 많고 텃세도 심한 동네 파출소에서 젊은 여성 파출소장으로서의 어려운 점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처음 치기 가득한 몇달간은 특별히 힘든 줄도 몰랐고 무슨 일이든 이만큼 힘들겠지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일이 익숙해진 지금 생각해보니 힘들고 곤란한 일들이 많았고 나름대로 보람있는 일도 경험한 것 같다.

특히 이번 수능시험일의 경험은 각별했다. 영하의 강추위 속에 오전4시부터 일어나 시험장 주변 질서 유지를 위해 고생한 일은 어렵고 힘들었다기보다 보람있는 기억에 속한다. 내가 시험을 볼 적엔 경찰관들이 새벽부터 시험이 끝날 때까지 불철주야 밖에서 그리 고생하는 줄 몰랐다. 하지만 문제지 호송하기, 시험장 주변 교통질서와 수험생을 격려하러 나온 친지들의 질서 유지하기, 112차로 수험생 태워다주기, 수험표 잃어버린 수험생을 고사장 본부까지 안내하기 등 남들이 잘 몰라주는 고생을 보람으로 이겨냈다.

7월에는 갈 곳 없는 어떤 알코올 중독자가 보호소에 보호되기 위해 나체로 아현3동 거리를 뛰어다닌 사건이 있었다. 사건이 접수된 시간에는 파출소에 남자 직원들밖에 없었는데 그들은 현장에 출동하고 파출소로 데려와 해당 기관에 인계하는 모든 과정에서 나를 경계하며 소외시켰다. 나는 음양오행의 이치를 깨달을 수 있으리란 막연한 기대에 은근히 좋아했는데 직원들의 극성 때문에 철저히 사건에서 소외되었다. 그 일은 지금까지 직원들 사이에 두고두고 회자되는 에피소드가 되었다.

이러한 우여곡절 가운데에서도 열심히 일하려는 나의 사기를 여지없이 무너뜨리는 일도 있다. 경찰비리 운운하거나 혹은 나이와 성을 들먹이며 험한 소리를 면전에서 내지르는 시민들의 모습이다. 보통 위법사항 때문에 파출소에 오게 된 그들의 논리는 이렇다. 경찰은 국가의 녹을 받으며 자신들은 그 녹을 충당하기 위해 세금을 낸다는 거다. 민주 경찰, 민중의 지팡이가 한번쯤 눈감아 줄 수도 있지 않느냐는 거다. 게다가 술까지 한잔 걸친 시민들은 원색적으로 경찰관을 비난하기도 한다. “네 나이가 얼마냐” “여자인 주제에” 하면서…. 나이와 성의 한계를 극복하고 오히려 그것을 장점으로 여기며 나름대로 열심히 근무하고 있는 나에겐 그런 취중진담이 서운하다.

경찰관의 기본임무는 법을 집행하는 것이고 그 법을 집행하기 위해서는 든든한 권위가 있어야 한다. 그러한 권위는 단지 법조항에서 얻어지는게 아니라 나라의 주인이자 법집행의 대상이 될 수도 있는 시민들의 이해와 협조, 신뢰에서 나온다는 생각이다.

IMF사태 등으로 시절이 하수상하고 나라가 어수선할수록 나라의 치안과 질서를 유지하는 경찰의 역할은 더욱 크고 그만큼 고단하다. 하지만 시민들이 우리 경찰공무원을 믿어주고 그 권위를 인정해준다면 더욱 긍지를 갖고 최선을 다할 수 있을 것이다.

김영미(서울 아현2파출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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