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재벌구조 바뀌나?

  • 입력 1998년 10월 23일 19시 27분


5대 재벌이 그룹 내 이업종(異業種)간 상호지급보증을 올해안에 완전히 해소하기로 정부와 합의했다. 국내경제에 중요한 상황변화가 시작됐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최소한 이 합의만 지켜져도 재벌 내 계열사간 연결고리가 끊어져 이른바 선단식(船團式) 경영의 해악이 상당부분 해소될 전망이다. 궁극적으로는 정부가 추구하는 재벌의 해체를 알리는 첫 실행프로그램이 작동했다고도 할 수 있다.

상호지보를 해소하는 방안에도 무리가 없다. 이업종에 대한 지급보증을 동종계열사로 이전하거나 신규담보대출 형식으로 해소하는 방안 등은 기업에도 무리가 없고 은행으로서도 크게 부담이 안가는 것이다. 단지 다른 계열사로 옮겨진 상호지보도 언젠가는 해결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일시적 모면책이 아니냐는 의문은 남는다. 재벌을 지나치게 압박하는 것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거꾸로 편법을 통해 재벌입장을 살려줬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특히 이번 정부와 재벌의 합의 가운데서 눈에 띄는 대목은 재벌의 대출금을 출자로 전환토록 길을 터 주고 경영권까지 보장한 것이다. 기업의 안정적 활동에 도움이 된다는 차원에서 취해진 조치일 것이다. 또 재계가 요구했던 구조조정특별법은 수용하지 않되 개별법으로 구조조정을 뒷받침해 주기로 한 것도 무리가 없어 보인다. 기타 합병비율 산정방식과 주식매수 청구권제도의 개선 등은 정부가 진작 정비했어야 할 사항들이다.

그러나 정재계협의에서 논의됐던 재벌의 외자유치 문제는 정부가 지나치게 다그칠 일만은 아니다. 계열사를 팔아 4년간 2백90억달러의 외자를 유치키로 정부와 합의한 이상 재벌이 지난 반년 사이에 45억달러 이상 외자유치를 달성했으면 그리 나쁘지 않은 실적이다. 정부가 자꾸 다그치면 외국 투자가들만 좋은 일 시키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제값 받고 팔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해주는 것이 국가경제 전체를 위해서도 좋다. 공연히 분위기에 휩쓸려 무리한 압박을 가하는 것은 더 큰 것을 잃을 수도 있다.

당초 정부가 이업종간 상호지보 문제를 해소키로 한 시한은 2000년3월말이었다. 그것도 지난주에 제시된 시한이다. 그런데 정부가 왜 서둘러 올 연말까지로 시한을 앞당겼는지는 의문이다. 혹 성과와 실적에 급급했다면 그 과정에서 필연코 재벌에 이면적으로 양보해야 하는 일들도 생길 수 있다. 그런 편법을 썼다면 정부가 재계에 약점을 잡히는 일이다. 졸속은 또다른 졸속을 낳는 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합의가 전체적으로 방향을 바르게 잡은 것은 다행이다. 이제 남은 것은 정부와 재계가 약속을 이행하는 일이다. 경제회복의 촉발제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기대를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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