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꿰맞춘 재벌빅딜

동아일보 입력 1998-10-07 19:04수정 2009-09-24 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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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대 재벌그룹의 사업구조조정을 위한 1차 빅딜안이 발표됐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번 합의안은 빅딜이 아니라 경영주체 조정에 지나지 않는다. 꼭 사업교환형식이어야 하느냐에 대한 논쟁은 있을 수 있지만 어쨌든 당초 정부와 재계가 국민에게 약속했던 구조조정과는 거리가 있는 게 사실이다. 특히 협의대상이었던 7개 과잉 중복투자부문 가운데 그나마 재벌간 경영주체에 대해 합의한 것은 4개 업종에 불과하다. 반도체 등 핵심 3개 업종은 결정을 미뤄 전체적으로는 미봉의 인상을 주고 있다.

물론 재계의 주장에도 수긍할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수조원짜리 사업을 주고 받는 협상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더구나 시한에 쫓기고 정부에 떼밀려 조정을 해야 하는 어려움을 가볍게 볼 수는 없다. 오죽하면 자율합의에 실패할 경우 퇴출시킬 수도 있다는 정부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밖에 못냈을까. 그러나 이런저런 재벌의 입장을 다 이해한다 해도 이번 합의안은 기대에 미흡했다.

우선 재벌들의 상황인식이 너무 안이하지 않느냐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환란의 모든 책임이 재벌에 있는 것은 아닐지라도 재벌들의 방만한 투자와 과당경쟁이 경제위기의 큰 원인이 됐던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이번 기회에 재벌들이 국가경제 재건을 위해 사욕을 버리고 경쟁적 중복투자에서 비롯된 문제들을 스스로 해소해주기 바랐던 것이다. 그러나 협상과정에서 보여준 행태는 국민적 기대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대승적 차원의 양보 대신 여전히 기업이기주의에 집착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런 가운데 재벌들은 자신들이 안고 있는 부채를 출자로 전환해주고 대출금 상환조건도 개선해줄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러한 요구가 받아들여질지는 지금 가늠하기 어렵다. 채권은행단과 정부가 판단할 일로서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은행과 정부는 재벌들이 제출한 경영개선계획서가 장래 우리 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확신을 줄 수 있는 것인지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지원이 꼭 필요한데도 감정에 치우쳐 실기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지만 허울뿐인 사업조정이라면 특혜가 뒤따라서도 안된다.

5대그룹 총수들은 이번 합의가 어디까지나 1차적인 것에 지나지 않고 앞으로 추가적인 협상이 더 있을 것이라고 예고한 만큼 1차 조정안에 대한 여론을 앞으로의 협상에 반영해주기 바란다. 국민은 재벌의 구조조정이 지금 시작에 불과하다고 믿고 있다. 재벌들이 환골탈태하려는 모습을 보여줄 때 재벌에 대한 국민의 부정적 인식은 개선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경제 전체를 살리는 길도 그것이다. 재벌들의 결단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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