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한상춘/동북아 경제통합의 가능성

  • 입력 1998년 9월 24일 19시 11분


세계경제가 지난해를 고비로 급격히 침체국면에 빠지고 있다. 이러다간 세계경제가 1929년에 이어 다시 대공황에 빠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세계경제가 침체된 이유는 여러가지 있겠으나 외자와 수출에 의존하는 일본식 성장모델을 답습한 아시아 국가들이 그 한계를 드러낸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해 이후 닥친 금융위기가 실마리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일본이 장기간 경기침체를 겪으면서 아시아 국가들에 수출시장을 제공하지 못한 것이 주요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 한-일 자유무역 검토를

이에 따라 미국 등 선진국은 세계경제의 안정화 방안을 모색하면서 일본의 경기회복 문제를 최우선 과제로 거론하고 있다. 일본이 회복돼야 아시아 금융위기가 해소될 수 있으며 아시아 지역에 원자재 수출을 많이 하는 중남미 국가들도 금융위기의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오쿠라 가즈오(小倉和夫)주한 일본대사가 우리나라와의 ‘자유무역지대’나 ‘경제통합’설립 가능성에 대한 공동연구를 제안했다. 그 제안에는 1차적으로 일본에 대해 대외적으로 가중되고 있는 경기회복 압력을 완화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지금과 같은 달러화 일변도의 세계 경제질서 속에서는 경기회복을 모색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일본 나름의 고심도 있는 듯하다.

즉 동아시아 지역에 있어서 현재 일본이 구상하고 있는 엔화 블록권이 실현돼야 지금의 경기 침체와 미국의 압력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이를 위해 우선적으로 한국과의 자유무역지대 설치를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한 수순이라는 판단에서 이번 제안이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일본대사의 이같은 제안에 대해 국내에서는 아직까지 부정적인 시각이 지배적이다.

양국간 산업의 보완성이 취약하고 상대적으로 경제의존도와 관세율이 높은 우리 입장에서는 경제실리면에서 불리하다는 것이다. 또한 식민지지배 독도문제 등으로 쌓인 정치적 역사적 감정도 장애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우리국민의 입장에서는 일본과의 자유무역 구상이라는 말만 들어도 과거를 들먹이는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거나 지금의 위기상황에 편승하여 일본이 ‘경제식민지’를 획책하고 있다는 부정적인 시각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당면한 최우선 과제는 지금의 위기상황을 극복하는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본다면 달러화 일변도의 질서와 미국 편향적인 대외정책으로는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데 한계가 있다.

외채문제에 있어서도 일본이 우리의 최대 채권국이고 국내기업들은 일본기업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지금의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경제관계에 맞게 대외정책을 균형적으로 조정할 필요가 있다. 환율 운용도 달러화보다는 엔화와 연계시킬 필요가 있다.

주요 채권국들이 조기 채권 회수에 나서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 외채의 상환 부담에서 벗어나고 일본 기업들의 투자를 적극적으로 이끌어내는 일도 중요하다.

그러므로 한일 양국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전체의 경제 협력에 커다란 장애가 돼왔던 정치적 역사적 감정을 현 위기상황에까지 투영하는 것은 서로에 유익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의 금융위기를 야기한 달러화 위주의 질서에서 희생양이 되지 않으려면 경제 문제는 물론 동아시아 지역의 외교 현안인 남북한 문제 독도문제 센카쿠(尖閣)열도문제 북방영토문제를 한일 혹은 동아시아 지역통합 차원(혹자는 이것을 아시아적 유럽연합개념인 ‘슈퍼 스트럭처’로 통칭하는 사람도 있다)으로 승화시켜 논의해야 해결이 가능할 것이다.

▼ 한국이 주도해야

앞으로 한일 양국이 자유무역지대를 연구하고 추진한다 하더라도 이는 궁극적으로 동아시아 전체의 지역통합체로 발전시킬 의무와 방향성을 갖고 추진해야 한다.

현재 아시아 패권을 둘러싼 일본과 중국의 야망과 동아시아 국가간의 발전단계 차이를 감안할 때 한일 자유무역지대와 동북아시아 지역통합체 구상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중간자적 위치인 우리가 일본보다 주도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그것이 지금의 아시아 금융위기 문제를 해결하고 세계경제 안정에 기여하면서 우리의 국제적인 위상을 높이는 길이기도 하다. 10월에 있을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일본 방문에 기대를 거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한상춘(대우경제硏 국제경제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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