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과외수사 왜 꼬리 내리나

  • 입력 1998년 9월 4일 19시 28분


기세 좋게 시작된 경찰의 고액과외 수사가 웬일인지 꼬리를 내리고 있다. 고액과외에 얽힌 교육계의 구조적 비리를 낱낱이 밝히겠다던 당초 의지는 어디로 갔는지 그 배경이 석연치 않다. 항간의 추측대로 족집게과외를 시킨 학부모 중에 힘센 지도층이 많기 때문이라면 보통 문제가 아니다. 수사가 여기에서 멈춘다면 교육개혁은 이루기 어렵다. 소문으로만 떠돌던 1인당 수천만원대의 과외가 사실로 확인된 순간 허탈감에 빠진 서민층 학부모들은 또 어떻게 달랠 것인가.

수사를 이대로 종결시켜서는 안된다. 보도에 따르면 ‘족집게과외사기’ 주범에게서 압수한 몇 권의 수첩에는 수백명의 학부모와 교사명단이 적혀있다고 한다. 이 가운데 수사대상을 학부모 70여명과 교사 1백30여명으로 압축한 근거부터 의혹을 살 만하다. 경찰은 수사인력부족 등을 이유로 내세운 모양이나 구실이 될 수 없다. 그나마 그들에 대한 조사도 형식에 그친 인상이 짙다. 수사 초기에 감시소홀로 놓친 주범을 다시 붙잡으려는 의지도 미약하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주범인 학원장의 사기행각보다 교사와 학원의 검은 거래관계다. 교사가 지도층 자녀들을 학원에 소개했는가 하면 중간에 모집책 역할을 한 교사도 있다는 것이다. 교사들은 대가로 향응과 돈봉투를 받으면서 공생관계를 맺어온 것으로 드러났다. 과외교습이 금지된 교사가 직접 학원강단에 서기도 했다. 특히 일부 교사는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문제를 유출, 주범의 ‘내신성적 높이기’사업을 도와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교사를 그대로 용서해야 옳은가.

수사가 흐지부지 끝나면 이미 사표가 수리된 서울대총장만 희생된 꼴이 된다. 학부모명단 공개 약속이 반드시 옳다고 볼 수는 없지만 그것도 간곳이 없다. 학부모들은 이번에야말로 뭔가 그럴듯한 과외근절 대책이 나오리라고 기대해 보았으나 교육부가 내놓은 대책은 보잘 것 없다. 해당교사와 교장 교감에 대한 문책강화 정도의 엄포용이 고작이다. 거기에다 학생이 무슨 죄가 있다고 사회봉사활동 등을 부과하겠다는 무리한 발상을 가미했을 뿐이다.

이번에 드러난 가장 큰 문제는 공교육이 기로에 서 있다는 점이다. 교육개혁의 큰 목표인 교육정상화는 공교육을 중심으로 한 개념이다. 여기에 앞장서야할 교사들이 오히려 빗나간 사교육에 가담하고 말았으니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상황에서 2002년부터 예정된 내신성적에 의한 무시험 대입전형이 의미를 가질 수 없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꿋꿋이 교단을 지키는 대다수 교사들을 위해서도 고액과외 수사는 계속돼야 한다. 필요하다면 검찰이 재수사에 나서야 한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