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속에서/춤출 수도 있고 이야기할 수도 있고/노래할 수도, 무엇을 먹을 수도’ 있을만큼 어둠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가 정작 두려워하는 것은 ‘어둠속에서, 가령 어둠보다 더 캄캄한 얼굴을’(‘어둠 속에서’중) 보게 되는 것이다.
“모든 것을 운명에 맡기자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머리를 싸맨다고 더 좋아질 일도 없고 안 싸맨다고 해서 더 나빠질 일도 없다는 생각으로 매사를 대하다보면 여유를 가지게 되죠.”
세파에 맞서기 위해 그는 ‘멍청한데다 삐뚜름하기까지 한’ 못생긴 내 얼굴을 비춰보는 일부터 한다. 그러고는 ‘어쩌겠니, 내가/어제 오늘 못생겨진 것도 아니고… /항상 이렇게 생겼었다는 것이 위로가 되다니!’(‘긴말 하기 싫다’중)라고 웃는다.
시를 써서 돈을 버는 일에 대해서도 ‘이것은 내 피와 땀을 판 게 아니라 영혼을 판 빚’이라고 고백하지만 우는 소리는 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평생 이 빚을/다 갚고 죽을 수 있을까?/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지는데…//…나는 마땅히 치를 것을 치러야 할 뿐, 빚을 담보로, 비장하고 의연하게!’(‘목고리’중)라고 다짐한다.
그의 시에서 배어나는 역설, 빚진 자의 배짱과 가진 것이 없어 연연할 것도 없는 사람의 자유로움은 곧 삶을 대하는 강인함이 된다. 약해질 때마다 자신을 일깨우는 황인숙의 ‘맹세’는 이런 것이다.
‘나는 아무의 것도 아니고/아무 것도 아니라는/구절초처럼 빛나는 혈통에 대한/간도 쓸개도 없이//멍하니 기가 죽어 살고 있다.//나는 타락했다./내가 아무의 것도 아니고/아무 것도 아니라는/피의 계율을 잊었기 때문에.’(‘자유로’)
〈정은령기자〉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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