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봉순이 언니가 어머니에게 행하는 집요한 저항의 몸짓을 뒤통수로 느끼면서 까만 씨를 받아내 원피스의 앞주머니에 넣었다. 통통하던 나팔꽃 이파리와 꽃잎들은 이제 말라버렸다. 하지만 이 눈동자처럼 검은 씨앗이 내년 봄에는 다시 담장따라 피어나리라. 아침마다 이슬을 머금은 그 황홀한 보라빛. 열세개, 열네개, 열 다섯개…. 봉순이 언니의 울부짖는 소리, 내 눈에서도 자꾸 눈물이 솟고 있었다. 나는 흰 블록담을 따라 내 몸을 더 작게 붙였다.
―안가요! 안간다니까!
―글쎄 갑자기 또 웬 고집이니? 아침까지는 그러겠다고 하더니, 이것아, 동네 창피한 줄 알아야지, 웬 소리를 지르는 거야, 지르길!
나는 꽃밭에 서서 계속 울었다. 언니가 하지 않으려하고 어머니가 하게 하려는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 상황인지 알 수 없었지만, 하지만 어렴풋한 느낌은 있었고, 설사 그것이 어떤 상황이 되었든 내게는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승강이를 들으며 아마 산다는 게, 아마도 힘겹고 슬프고, 등불 하나 없이, 먼 먼 들판을 걸어가는 일 같다는 걸, 누구나 헨젤과 그레텔보다 험하고 처량하게 숲속을 헤매야 하는 것이 아닐까, 아마도 그것을 나는 봉순이 언니의 울음소리를 통해 미리, 내 인생의 낮은 배경음을 듣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헨젤과 그레텔은 뭐하러 집으로 돌아왔을까, 마녀를 죽이고 빼앗은 보물을 가지고 숲속에서 그냥 오순도순 살지. 뭐하러 그 악독한 새어미와 줏대없는 아비가 사는 집으로 돌아왔을까.
하지만 지금 생각해도 신기한 것은 그렇게 울부짖으면서도, 어머니보다 더 살이 찌고 힘이 센 봉순이 언니는 어머니에게 끌려가고 있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대문가에 당도했다. 어머니가 대문가에 봉순이 언니를 세워 놓았고 이어서 이마의 땀을 닦으며 말했다.
―그래, 내가 너 여기까지는 끌고 왔다만, 나도 더는 못하겠다. 어떻게 할래? 갈래 말래? 간다면 모든 걸 책임져주겠지만 가지 않겠다면 좋다! 다 네 마음대로 하거라. 대신 나와는 이제 끝이고, 그리고 당장 우리집에서 나가거라. 자 어서 말해라. 가겠니? 말겠니?
어머니는 단호했다. 이제 대문을 밀고 골목으로 나가면 마주치게 될 동네사람들의 이목도 생각해야 했을 것이다. 싫다고 몸부림치며 어머니에게 거의 끌려나가던 봉순이 언니의 고개가 푹 수그려졌다.
―어서 말을 하라니까!
순간 봉순이 언니의 얼굴이 실룩거리더니 그 자리에 주저 앉았다.
<글:공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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