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1998년 6월 12일 19시 12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그녀는 여전히 검자주색 보자기에 싼 보따리를 껴안은 채였다. 그러다 문득 시선이 마주쳤다. 겁먹은 그녀의 커다란 두눈이 잠시 멍하니 꿈벅꿈벅했다. 커다란 쌍꺼풀진 눈 이며 검은 속눈썹이 어여쁜 소녀였다. 그녀는 알았을 것이다. 이 룸메이트가 결코 자신을 환영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갑자기 그녀가 고개를 벽쪽으로 꼬았고, 이 낯선 것 투성이의 풍경을 이제는 더 참을 수가 없다는 듯, 그러나 큰소리로 울면 안된다는 걸 알기는 한다는 듯,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한구석 벽에 머리를 기대고 훌쩍훌쩍 울었다. 그녀의 야윈 등은 참 조그마했다. 다시 그림책에 얼굴을 박았지만 그림책의 커다란 글씨들이 금방 어룽어룽해졌고, 잠자는 공주의 머리께에 얼굴을 박고, 나도 조그맣게 울었다. 봉순이 언니가 보고 싶었다.
미경이 언니는 그 후 다시는 울지 않았지만 늘 멍했다. 설거지를 하다가 어머니가 부르면 생각에서 깨어난 듯 화들짝 놀래며, 예하고 대답하면 그뿐, 금세 또 멍해졌다. 어머니가 새 옷을 사다주어도, 아주머니 고맙습니다, 하고 말할 뿐 그 옷을 입지 않았고, 제가 가지고 온 죽은 맨드라미색 보자기 속에 차곡차곡 개켜두고는 고집스럽게 촌스러운 초록색 셔츠만 입고 있었다. 내가 사 준 옷 다 어쩌고 꼴이 그게 뭐니, 몇번 지청구를 주다가 어머니도 포기해버린 듯했다. 미경이 언니는 안방에서 텔레비전을 보면서도 멍했고, 밤에 식구들이 모두 방으로 들어가 버린 후, 나와 함께 방에 앉아 있을 때도 나와 반대편 벽에 등을 기대고는 멍했다.
그녀도 나도 제각기 다른 벽을 향해 시린 등을 이불로 덮고 잠이 들었다. 그러다가 한번은 내가 그림책을 보고 있는데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이 느껴졌다. 내가 문득 고개를 들자, 그녀는 아주 희미하게 웃었다.
―다섯살이라구 했제? 니는 꼭 우리 닛째랑 빼닮아부렸어야,
그리고는 금세 그녀의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내가 업어 키운 안디, 짱이처럼 이뻐. 둘이 세워 놓으면 쌍둥이라 하겠구먼.
미경이 언니는 처음으로 환하게 웃었다. 그런 미경이 언니는, 어머니의 말에 따르면, 좀 멍해서 탈이긴 하지만 애가 심성이 곱고 무엇이든 시키면 금방 알아듣는 영특한 소녀였다. 그녀는 봉순이 언니처럼 부뚜막에 지저분하게 밥알들을 흘리지도 않았고, 아침에 먹는 빵을 거부하고 혼자 바가지에 밥을 말아 청승스레 먹지도 않았다.
공지영 글·오명희 그림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