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손호철/6월항쟁은 끝나지 않았다

  • 입력 1998년 6월 9일 19시 54분


오늘로 87년 6월 항쟁의 격발쇠라고 할 수 있는 6·10국민대회가 11주년을 맞는다. 현재의 한국 민주화를 가능케 해준 역사적 계기인 6월 항쟁에 대해서는 지난해 10주년을 기념하는 다채로운 행사들이 열렸고 11주년은 격이 떨어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올해의 경우 6월 항쟁의 한 축을 이루어 투쟁했던 김대중(金大中)씨가 대통령에 올랐고 또 역사상 처음으로 선거에 의한 평화적인 정권교체가 이루어진 뒤 맞는 첫 6·10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며 감회가 새롭다.

▼민주화운동세력 분열

물론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 역시 정치권 내에서 6월 항쟁에 참여해 직선제 개헌을 위해 투쟁했으며 그런 점에서 ‘문민정부’로 불렸던 김영삼정권도 6월 항쟁의 성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정권의 경우 여야3당 통합을 통해 창출된 정권이었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었다. 따라서 새 정권의 출범으로 직선제 개헌이라는 구호로 표출된 민주화를 향한 6월 항쟁의 정신은 이제 하나의 순환을 끝내고 어느 정도 마감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6월 항쟁이 이제 마침표가 찍힌 역사속의 사건으로 사라져버린 것인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런 것 같지 않다. 우선 항쟁의 주역 중 한 명이며 항쟁의 산물인 ‘문민정부’의 대통령이었던 김전대통령이 낡은 박정희(朴正熙) 모형의 전환에 실패해 IMF위기를 야기하고 ‘역사적 죄인’으로 칩거해 있는 반면 오히려 5공의 당사자들은 풀려나와 큰소리를 치고 있으며 ‘박정희향수’가 유행하고 있다.

또 유신 5,6공으로 이어져온 군사독재에 대한 저항과 민주화에 대한 국민적 열망을 의미하는 6월 항쟁의 11주년을 맞는 지금, 아직도 유신과 5,6공 세력이 한국정치의 중심에서 캐스팅 보트를 쥔 채 버젓이 행세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6월 항쟁의 현재성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즉 6월 항쟁에 참여했던 정치권의 민주화운동세력은 분열하여 그 한쪽인 민주계는 5년간의 영화를 뒤로 한 채 쓰러져가면서 5,6공세력과 함께 한나라당에서 동거하고 있고 또 다른 한쪽인 평민계는 결국 대권을 잡았다고는 하지만 유신세력과 공동정권의 명분 아래 동거하고 있다.

그리고 김대통령이 미국에서 국제적인 인권상을 수상하고 인권법 제정을 약속하고 있는 순간에도 많은 양심수가 아직도 옥에 갇혀 있다.

나아가 여권 일각에서 내각제 공약 실현을 주장하고 있어 11년전 획득한 대통령직선제가 사라질 가능성도 적지 않다. 오히려 11년 전보다 후퇴한 것도 있다. 그것은 지역주의이다.

물론 당시에도 군사정권의 지역패권주의 정책에 의해 지역갈등은 있었지만 지금처럼 전면화하지도 않았고 6월 항쟁 당시 우리 국민은 지역을 넘어 한 마음으로 민주화를 위해 싸웠다.

그러나 이제 지난 지자체선거의 결과가 보여주듯 우리는 동서분단이 완결됨으로써 정확히 김유신 이전의 시대로 돌아가버린 느낌을 주고 있다.

▼정치허무주의 극복을

나아가 6월 항쟁 당시 손에 손을 잡고 길거리를 메웠던 국민의 뜨거운 열정은 어디론가 다 사라지고 지난 지자체 선거에서 나타난 유례없이 저조한 투표율이 보여주듯 국민은 정치적 허무주의에 사로잡혀 있다. 그리고 이같이 민주화진영이 분열하여 군사독재세력이 아직도 캐스팅 보트를 쥐고 있는 데에는, 지역주의가 지금처럼 전면화한 데에는, 그리고 국민이 허무주의에 빠져버린 데에는 당시 국민이 목숨을 걸고 싸워 쟁취해 준 민주화의 성과를 정권욕 때문에 군사정권에 헌납해버린 양김의 분열 등 정치권의 행태가 결정적인 책임이 있다.

그러나 과거를 되돌릴 수는 없다.

다만 이제 정치권과 국민은 모두 지역분열, 이전투구의 파당정치, 허무주의를 딛고 일어나 6월 항쟁의 정신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6월 항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손호철<서강대교수 정치학>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