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이철호/외국인 관광객에 「바가지」 실망

  • 입력 1998년 5월 7일 08시 50분


얼마 전 서울에서 개최된 유엔기구 워크숍에 참석하기 위해 아시아태평양 지역 15개국에서 25명의 대표들이 내한했다. 이들의 편안한 서울 생활과 국제수준에 맞는 회의 진행을 준비해 온 우리들에게 참으로 실망스럽고 걱정스러운 일들이 발생했다.

공항에서 미아삼거리에 있는 호텔까지 택시를 타고 온 외국 대표들이 한결같이 엄청난 바가지 요금을 지불한 것이다. 2만원이면 충분한 거리인데, 그래서 이들에게 보낸 안내문에는 넉넉잡아 20달러면 된다고 통지했는데 한 사람은 7만원, 다른 사람은 10만원을 냈다는 것이다.

공항 택시의 바가지 요금은 동남아나 아프리카의 후진국 일이고 우리는 이미 그런 수준에서 벗어났다고 믿고 있던 우리에게는 너무나 충격적인 일이었다.

결국 이들이 돌아갈 때는 모두 지하철을 이용해 공항까지 갔다. 세계 여러나라의 국제회의에 참석하는 이들이 앞으로 한국에 대해 어떻게 말할지 정말 낯뜨거운 일이었다.

호텔 서비스도 문제였다. 호텔비에 아침식사를 포함시켰는데 음식을 주문하고 30분을 기다려도 음식이 나오지 않았다. 아침 8시반부터 시작할 회의가 이때문에 지연되었다. 이유인즉 종업원이 무단 결근을 했다는 것이다. 호텔에 세탁을 맡긴 사람은 옷 몇가지를 세탁하는데 6만원을 요구하더라고 했다. 프런트 직원을 불러 따졌더니 4만원으로 깎아준 뒤 손님이 보는 앞에서 두사람이 각각 2만원씩 나눠 갖더라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이런 수준인 줄 알았다면 국제회의를 유치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백번 후회했다.

이런 일들이 우리의 참모습은 아닐 것이다. IMF불황 때문이리라고 자위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국제적 신용이 땅에 떨어져 겪는 이 불황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은 우리의 성실성과 신뢰성을 세계에 보여주는 것이다. 모든 책임을 정책 실패에 떠넘기고 각자의 고통만을 호소하며 정부가 모두 해결해 주기를 요구하는 오늘의 사회분위기는 대단히 걱정스럽다.

오늘의 사태는 근본적으로 우리 각자의 부도덕함과 불성실 사치 낭비에 기인한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받아들이고 거듭나야만 이 시련을 이기고 다음 단계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철호<고려대교수·생명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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