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경태/긴축정책 올바른 처방 아니다

  • 입력 1998년 4월 14일 19시 41분


금년도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떨어질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나오자 일부에서는 경기부양과 구조조정의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대두되고 있다. 그러나 국제통화기금(IMF)체제하에서 경제성장률은 더이상 경제정책의 우선적인 목표가 될 수 없고 다만 경제 운용의 결과치에 불과하다고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외환위기를 완전히 벗어나기 위해서는 고통스러운 구조조정을 실천해야만 하고 그 과정에서 성장률의 둔화는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 경기침체 되레 가속화

따라서 우리는 기업의 부채비율을 낮추고 금융기관의 부실채권을 줄이며 망해야 할 기업과 금융기관이 시장원리에 따라 퇴출해 나가도록 하는데 충실해야지 성장률을 일시적으로 높이기 위해 구조조정을 희생시키려는 유혹은 경계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대량부도와 대량실업이 구조조정에서만 비롯된 것이 아니고 고금리 통화긴축 재정지출삭감 등 초긴축적인 거시경제정책에 의해 불필요하게 악화되고 있다는데 있다. 한국의 외환위기는 고인플레와 막대한 재정적자로 대표되는 거시정책 실패로부터 야기된 것이 아니라 관치금융과 과다한 차입경영으로 대표되는 미시경제 실패로부터 야기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처방으로 기업 및 금융 구조조정에 더하여 재정 금융 긴축이라는 이중의 부담을 지움으로써 우리 경제는 지금 빈사상태에 접어들고 있다.

극심한 매출 감소와 수익성 악화에 시달리고 있는 기업들은 설비 증설은커녕 생산성 향상을 위한 자동화 정보화 투자조차도 포기하고 하루하루의 연명에 급급하고 있다.

더욱이 기술개발과 인력개발 등 미래를 준비하는 투자가 우선적으로 잘려나가고 있어 이대로 가면 지금도 끊임없이 앞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미국 유럽 중국 등 경쟁국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매우 불리해질 것은 자명한 이치다. 재정운용에 있어서도 사회간접자본 건설과 기술개발지원 및 교육 예산이 대폭 삭감돼 경기침체를 가속화함은 물론 지식사회의 근간이 되는 정보의 창출과 우수한 인재의 양성에 큰 차질을 빚고 있다.

정부는 외국자본을 수혈받고 벤처기업과 중소기업을 내세워 활로를 뚫으려고 하지만 경제가 전반적으로 가라앉아 있는데 일부분만 잘 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는 마치 대양에 폭풍우가 휘몰아칠 때에는 모든 배가 항해를 포기하고 항구에 정박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앞으로도 초긴축적인 거시정책을 계속한다면 이는 폭풍우를 잠재우는 대신 더욱 부채질을 하는 형국이 될 것이다.

한국의 현 위기를 극복하는데 1929년 미국의 대공황은 하나의 참고 사례가 된다. 1929년10월28일 뉴욕 증시에서 주가가 폭락한 이후 43개월에 걸쳐 미국의 국내총생산(GDP)은 30% 감소하고 실업률은 25%까지 치솟았다. 자본주의 역사상 미증유의 대공황 원인을 놓고 지금까지 수백편의 논문이 쏟아졌고 케인스학파와 통화론자간에 논쟁이 계속되어 왔다. 그러나 공통으로 지적되는 사항은 연방준비은행의 수축적 통화정책과 연방정부의 보수적 재정운용에 큰 책임이 있었다는 것이다.

▼ 기업경쟁력 살려줘야

혹자는 긴축정책을 완화하면 대외신뢰도가 떨어져 외환시장이 다시 불안해지고 기업구조조정이 지연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지난해 말 외환위기는 국내금리가 떨어져 단기 투기성 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갔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니다. 우리 경제에 대한 믿음이 무너져 채무 연장과 신규 차입이 안되었기 때문에 발생했다.

한국을 떠났던 외국 투자가들을 다시 불러들이기 위해서는 기업과 금융기관의 구조조정 약속을 충실히 이행하고 정책의 투명성을 높여 잃었던 믿음을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긴축정책은 경제를 과도하게 침체시키고 대량실업에 대한 사회적 저항을 불러와 오히려 구조조정의 걸림돌이 된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이경태(산업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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