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초라한 월드컵」 안되게 하라

  • 입력 1998년 4월 9일 19시 55분


서울 상암동에 짓기로 했던 월드컵 주경기장의 건설계획이 사실상 백지화됐다. 정부는 어려운 경제사정을 감안해 상당한 예산이 드는 주경기장 신축을 포기하고 건설중인 인천의 문학경기장을 증설해 주경기장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서울은 2002년 월드컵 개최도시 명단에서 일단 빠지게 된다. 한국은 월드컵대회 유치 당시 서울에 주경기장을 새로 지어 월드컵을 치르겠다고 국제축구연맹(FIFA) 회원국에 약속했다.

2002년 월드컵축구대회가 4년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국제사회는 우리의 월드컵 준비상황을 주목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한국의 월드컵 개최능력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는 보도도 있다. 구장건설 등 대회 준비가 제대로 진척되지 않고 있는 탓이다. 공동개최국인 일본이 발빠른 움직임을 보이는 것과도 비교된다. 이런 마당에 국제적 약속인 서울 주경기장 건설을 취소하고 일부 지방도시 경기장의 신축계획도 재고한다는 소식이 외국인의 눈에 어떻게 비칠지는 쉽게 짐작이 간다.

상암동구장 백지화와 주경기장 신축포기 검토는 여러가지 면에서 합리성이 결여되어 있다. 서울이 개최도시에서 빠지게 되면 현실적으로 원활한 대회진행이 이뤄질 수 없다. 서울 의존도가 유달리 높은 국내 사정상 교통 숙박 편의시설 면에서 관람객의 불편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의사결정 과정에도 문제가 있다. 구장 신축은 곤란하다는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정부 당국자들은 상암구장 건설계획을 처음부터 배제한 채 대안찾기에 골몰한 인상이다.

정부는 월드컵을 가능한 한 큰돈 들이지 않고 알뜰하게 치를 구상인 것으로 보인다. 이런 구상은 월드컵 유치 이전과 경제상황이 크게 달라진 탓에 일정한 설득력을 갖는다. 그러나 지출을 줄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자칫 행사 자체가 위축돼 그야말로 ‘초라한’ 행사가 되고 말 가능성이 있다. 지구촌의 시선이 온통 집중된 가운데 공동주최국인 일본에서는 화려한 축제가 벌어지고 우리는 그만 못하다면 일본의 들러리 역할에 그칠 우려가 있다. 후유증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써야 할 돈은 쓰면서 그 대신 최대한 수익을 올리는 ‘경영마인드’가 월드컵 준비에도 필요하다. 예상관객 3백60만명, 경제효과 11조원이라는 2002년 월드컵의 ‘채산성’을 다시 한번 떠올릴 필요가 있다.

혹 전(前)정권이 유치한 월드컵 준비에 현정권이 적극성을 보이지 않는다는 인상을 주어서는 안된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월드컵을 국가적 사업으로 인식해 철저히 대비해야 옳다. 그러기 위해서는 보다 전향적 자세로 여론을 들어가며 월드컵을 둘러싼 현안을 재검토해 신중한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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