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여중생 집단자살 충격

  • 입력 1998년 3월 26일 20시 33분


여중생 4명이 고층아파트에서 함께 투신자살한 사건은 매우 충격적이다. 이들은 같은 학교에 다니는 친구 사이로 모두 가정형편이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가난이 싫다’ ‘우리 집은 돈이 없어 문제다. 아버지가 돈을 못벌어 살기 싫다’는 유서내용으로 보아 일단 어려운 가정형편을 비관한 집단자살로 보인다. 국제통화기금(IMF)한파 이후 실직한 가장들의 자살이 잇따라 일어나고 있는 가운데 어린 여중생들까지도 가난을 비관, 집단적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니 안타깝고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이번 여중생 집단자살은 지난 1월 서울의 한 아파트에서 중학생과 고교생 등 3명이 집단자살한 데 이은 것이어서 우리 사회의 청소년자살문제의 심각성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고 있다. 청소년자살은 90년대 들면서 급증추세를 보이고 있다. 교육부 집계에 따르면 자살한 남녀 중고생은 작년 한해에만 1백80명에 이르고 있다. 여기에 초등학생과 학교울타리 밖에 있는 10대들의 자살까지 합치면 그 숫자는 더 늘어난다.

청소년자살은 따지고 보면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잘못된 학교교육과 가정환경, 만연하고 있는 물질만능주의와 빈부격차 등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들이 그들을 자살로 내몰고 있기 때문이다.

대체로 오늘의 10대는 나약하고 심약하며 충동적이고 자기중심적으로 비친다. 대부분 풍요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태어나 큰 어려움을 모르고 자라 작은 역경과 고통도 참고 이겨내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가정에서도 대개 부모와의 대화는 단절돼 있다. 부모들은 공부하라는 말만 할 뿐 그들의 고민을 깊이 이해하지 못한다. 입시위주의 학교교육으로 성적이 떨어지는 학생들은 아예 설 곳이 없다. 요즘은 친구도 가정형편에 따라 끼리끼리 사귄다고 한다. 부잣집 아이와 가난한 집 아이가 서로 친구가 되기 어려운 분위기라는 것이다.

우리 청소년에게 장래의 자신의 모습으로 삼을 만한 이른바 ‘역할 모델’이 없는 것도 문제다. 이런 가운데 영상매체는 방황하는 청소년들에게 쾌락주의와 찰나주의만 심어주어 그들의 현실감각을 마비시키고 있다.

청소년자살은 선진국이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사회문제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선진국들과 달리 청소년자살에 대한 진지하고도 적극적인 대응태세가 거의 전무하다는 점이 문제다. 청소년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들의 눈높이에서 그들의 문제를 보고 대화하는 자세가 요구된다. 이번 여중생 집단자살사건을 계기로 각 가정은 물론 정부와 학교 사회단체가 청소년자살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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