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672)

  • 입력 1998년 3월 20일 07시 53분


제10화 저마다의 슬픈 사연들 〈140〉

“오, 얘야, 제발 진정하고 내 말을 끝까지 들어다오.”

이렇게 말하고 난 오빠는 지난 오 년 동안 있었던 일이며, 저를 찾아 카이로까지 갔다가 헛걸음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어떤 일이 있었던가 하는 데 대하여 소상히 털어놓았습니다. 그리고, 어찌하여 검은 옷에 검은 천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가 하는 것이며, 그 무서운 전염병에 걸려 마침내 오빠는 죽게 되었다는 사실까지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끝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얘야, 마지막으로 네게 할 부탁은 내가 죽은 뒤에라도 절대 검은 천을 내 얼굴에서 벗기지 말고 하루 속히 매장해 달라는 것이다.”

이 말을 들은 저는 너무나 놀란 나머지 새된 소리로 비명을 지르며 벌떡 장의자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는 오빠와 한 약속 따위는 까마득하게 잊은 채 오빠에게로 달려갔습니다.

“오! 안돼! 가까이 오면 안돼!”

오빠는 이렇게 소리치며 저를 만류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오빠는 그때 이미 제 몸을 가눌 수도 없을 정도였습니다. 오빠는 맥없이 바닥에 꼬꾸라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자비로우신 알라시여!”

이렇게 소리치며 저는 오빠의 머리를 들어 제 무릎에 뉘었습니다. 그리고는 오빠의 얼굴을 가리고 있는 검은 천을 걷어냈습니다. 오빠와 한 약속이나, 오빠가 걸렸다는 그 전염병 따위는 저에게 문제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하여 저는 꿈에도 그리던 오빠의 얼굴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만, 제가 본 오빠의 얼굴에는 이미 병색이 완연했습니다.

“오, 얘야! 제발, 제발 그 검은 천으로 내 얼굴을 덮어다오.”

자신의 얼굴이 노출되자 오빠는 당혹감에 찬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검은 천 대신에 저의 두 손으로, 그리고 저의 얼굴로 오빠의 얼굴을 덮었습니다. 그때 저의 두 눈에서는 감당할 수 없는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죽으면 안돼! 오빠! 죽으면 안돼! 오빠가 죽는다면 차라리 나도 전염병에 걸려 죽는 게 나아.”

저는 이렇게 울부짖었습니다만, 저의 무릎을 베고 누운 오빠는 희미한 목소리로 마지막 신앙고백을 했습니다. 그리고 눈을 감았습니다.

저는 오빠를 떠나보내는 것이 너무나 애석해 사흘 동안 매장하지 않았습니다. 사흘이 지난 뒤에야 저는 검은 천으로 오빠의 얼굴을 덮은 뒤 매장했습니다.

오빠를 매장한 뒤 석 달 동안을 저는 울면서, 오빠의 목숨을 앗아간 전염병이 저에게도 걸리기만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저에게는 어떤 병세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 야속한 병마는 오빠와 저 사이를 갈라놓기만 했을 뿐이었습니다.

그 뒤 저는 저의 두 이복 언니들이 살고 있는 집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제가 겪은 슬픈 사랑이야기를 들려주었고, 제 이야기를 들은 언니들은 눈물을 흘리며 저를 위로해주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언니와 함께 살았습니다만, 그러던 중 어젯밤에 세 탁발승과 교주님 일행이 찾아왔고, 그리하여 그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졌던 것입니다.

세번째 여자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났다.

(글·하일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