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남찬순/장관실에 줄서기

  • 입력 1998년 3월 16일 19시 38분


얼마 전 정권인수위원회가 1백부 한정판으로 ‘정부산하기관 및 지원단체 현황’이라는 6백여쪽짜리 자료집을 냈다. 정부산하기관과 지원단체의 기능 정원 예산 등을 상세히 실었다. 믿기 어렵겠지만 이같은 자료집이 나오기는 처음이라고 한다. 여태까지는 정부산하 기관과 단체가 몇개인지조차 정확히 파악되지 않았다. 지금 여권에서는 이 자료집이 ‘구직참고서’처럼 인기를 끌고 있는 모양이다. 찾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정부산하기관장이나 단체장 자리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권력에 ‘줄 잘 대는 사람’들이 차지해 왔다. 전체 임원의 90%이상이 낙하산 인사였다는 통계도 있다. 퇴직한 고위공직자나 직업군인 출신, 특정인맥 인사들이 ‘전리품’처럼 나눠가졌고 그래도 자리가 모자라 현업과는 무관한 이사장제도까지 만들었다. 청와대에는 권력주변 인사들의 ‘취업알선소’ 역할을 하는 별도의 비서관까지 있었다.

이제 또 그런 바람이 불고 있다. 장관 비서실에는 갖가지 배경을 등에 업은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다는 것이다. 그만큼 고생했는데 먹고 살 자리는 마련해 주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자가발전식 당위론이 무성하다. 여기에 주변의 온정론까지 합세해 과거경력이 무슨 큰 기득권처럼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서로가 물고 뜯는 물밑 로비는 보지 않아도 뻔하다.

▼ 정부산하기관 정권 바뀔때마다 「낙하산」 ▼

새 정부도 이러한 인사 폐단을 모를 리 없다. 그래서 내부승진과 전문경영인 영입을 우선하며 필요에 따라 정치인과 퇴직공무원을 기용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곧 인사에 착수할 것이라고 한다. 두고 볼 일이다.

그러나 지금은 인사보다 더 급한 것이 구조조정이다. 자료에 따르면 1월말 현재 총 5백52개 정부산하기관과 지원단체의 근무자수는 38만5천여명, 올해 예산은 무려 1백43조원이나 된다. 인력은 전체공무원 수의 40%이면서 예산은 정부예산의 두배다. 그러다보니 정보비만 매년 수십억원 쓰는 기관, 상여금과 수당으로 3백억원을 초과 지출한 기관, 2백60억원을 이자놀이한 기관 등 갖가지의 흥청망청한 사태가 드러나고 있다.

더구나 각 부처 사이에는 물론 부처 내부에 똑같은 일을 하는 기관이 몇개씩 병존해도 전혀 통폐합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한국전력이 본업과는 무관한 방송사를 인수하고 포항제철이 통신회사를 운영하는 등 무작정 자회사를 늘려도 제지할 장치가 없었다. 각 부처는 산하기관과 지원단체를 ‘품안의 이권’으로 생각하고 오히려 확장을 조장해 왔다. 그래서 과거 통상산업부는 1백36개, 재정경제원은 61개, 보건복지부는 60개, 문화체육부는 51개에 이르는 산하기관과 지원단체를 거느렸다.

▼ 합리적 인사풍토 확립해야 ▼

정부는 곧 인사를 단행한 후 금년 상반기 중 각 부처의 검토안을 토대로 구조조정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순서가 바뀌었다. 그러잖아도 각 부처의 이기주의 때문에 구조조정이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론이 적지 않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통치권차원에서 비상수단을 강구해야 한다는 얘기까지 들린다. 엄청난 환부를 그대로 두고 인사부터 한다면 구조조정 후 또 인사를 해야 하는 등 일이 중복된다. 그때는 새 기관장이나 단체장이 된 ‘실력자’들의 저항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가뜩이나 일부에서는 6월 지방선거를 의식해 의도적으로 작업을 늦추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그렇게 구태의연한 표의식을 하고 있다면 처음부터 기대할 것이 없다.

빨리 난마같은 판을 정비하고 사람을 들이는 것이 옳다.

남찬순<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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