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며 생각하며]김동호/한국영화 살릴 길 없나?

  • 입력 1998년 3월 13일 19시 19분


영화진흥공사의 판권담보 사전제작비 융자로 영화계가 시끄럽다. 국제통화기금(IMF)한파에 부동산 담보도 없이 무이자로 3억원을 융자해준다니까 충무로가 소란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10편을 뽑는데 91편이 접수되었으니 그 열기는 짐작하고도 남는다.

한편에서는 공사에서 내건 조건이 영화진흥정책으로서는 전혀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불평도 나오고 또 한편에서는 영화계 풍토에 비추어 30억원 중 상당액은 회수가 불가능해져서 모처럼 마련한 좋은 착상이 한번으로 끝나지 않겠느냐는 우려도 무성하다.

▼ 대기업 투자 갈수록 줄어▼

공사의 진흥기금은 고작 1백30억원밖에 안되는데다가 영화감독이나 제작자들은 영진공과 대기업 이외에는 제작비를 지원받을 곳이 없는데 최근에는 대기업조차 영상사업에서 발을 빼고 있는 우리의 열악한 영화제작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96년을 기준으로 1년간 1백4편의 극영화를 제작한 프랑스, 우리와 비슷하게 63편을 만든 독일, 30편밖에 만들지 않은 호주의 제작여건은 우리와 비교해본다면 하늘과 땅 차이임을 알 수 있다.

88년 호주영화재정공사를 설립하고 영화산업에 대해 본격적인 재정지원에 나선 호주정부는 매년 7천만호주달러(약 8백40억원)를 영화계에 지원해왔다.

최근엔 5천5백만호주달러(약 6백60억원)정도로 규모를 줄였지만 대단한 열성과 애정이 아닐 수 없다. 독일은 어떤가. 독일 연방영화공사(FFA)의 연간 영화산업 지원금은 6천만마르크, 우리 돈으로 5백40억원에 달한다.

독일 영화제작편수가 우리와 비슷한 점을 감안하면 상당한 규모다. 연방영화공사의 지원금은 주로 극장 입장료, 비디오판매에 대한 부과금, 방송사 지원금으로 조성된다. 특히 ARD, ZDF 등 방송사 지원금은 정부와의 협약에 의해 이뤄진다. 이 돈과 지방자치주의 지원액을 합하면 연방영화공사 지원의 배에 달하니 부러움을 금할 수 없다.

프랑스의 국립영화센터(CNC) 설립목적은 공사와 같지만 기능은 문화관광부의 정책기능을 합한 것이어서 이채롭다. 이 국립영화센터가 96년 한 해에 영상산업과 TV프로덕션을 위해 집행한 예산은 무려 24억4천만프랑. 원화로 6천6백억원, 당시 환율로 환산하더라도 무려 3천3백억원에 달한다.

이 엄청난 자금의 출처를 따져보자. 극장입장료에 대한 11%의 부과금으로 5억프랑, 극장수입이 줄면서 84년부터 시행한 공중파 및 케이블TV사의 기부금(총매출액 중 5%)으로 15억5천만프랑, 95년부터 시행한 비디오사 기부금(총매출액 중 2%)으로 8천만프랑, 기타 정부지원금으로 조성된다. 이 예산 상당액수가 극장 개보수비나 TV프로덕션에 재투자되지만 이중 3분의1에 해당하는 8억프랑은 영화제작과 배급에 직접 지원된다.

▼ 재정지원 방안 마련해야 ▼

특히 방송사에 의한 영화산업지원은 엄청난 규모인데 96년에 5개 방송사에 의한 프랑스영화 구입비만 15억3천만프랑에 달했다. 국립영화센터에 따르면 한편의 영화를 만드는 비용은 24%만 제작자가 부담하고 13%는 국립영화센터가, 42%는 방송사가 댄다.

나머지 21%는 해외 등에서 지원받는다. 우리 영화와 방송사 간의 상황을 생각할 때 시사점이 많은 대목이다.

2월초 파리에서 칸영화제 집행위원장의 소개로 만난 프랑티에 유니프랑스사장이나 베를린에서 회동한 유럽영화진흥기구 대표들은 한결같이 올해부터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되는 자국 배우 감독에 대한 항공료 지원을 약속하고 있다.

해외진출을 위한 이들의 열의는 깊이 인상에 남는다. 새 정부의 과감하고도 실효성 있는 영화진흥정책을 기대하며 정책 당국, 영화인들의 열의와 적극성이 달아오르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란다.

김동호(부산 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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