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경제 발목잡는 정치

  • 입력 1998년 3월 10일 19시 26분


국정 전반의 갈 길이 바쁘다. 특히 경제는 하루 하루가 급하다. 그런데도 정치가 경제의 숨통을 터주기는커녕 오히려 발목을 붙잡고 있다. 국민은 정치권을 향해 분노하고 있다. 나라 형편에는 귀도 막고 눈도 가린 듯 싸움질만 계속하는 정치인들은 도대체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국민은 묻고 있다.

무엇보다 추가경정예산안 처리가 늦어져 실업자 취업알선 등의 사업에 심각한 차질이 생기고 국책사업들도 잇따라 중단되고 있다. 중소기업 자금난과 수출기업 원자재난이 가중되고 금융체제 안정화도 늦어지고 있다. 외국 언론들은 “낡은 정치가 새로운 한국을 침몰시킬 수도 있다”는 등 경고를 내놓고 있다. 그런 보도들이 한국의 대외신인도에 좋은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정치권의 시비는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김종필(金鍾泌)국무총리서리 파동에 북풍(北風)수사와 경제청문회 문제까지 겹쳤으나 어느 것 하나 풀리지 않은채 새로운 쟁점이 날마다 추가된다. 급기야 거대야당 한나라당은 김총리서리 권한쟁의 심판청구와 효력정지 및 직무집행정지 가처분신청을 헌법재판소에 냈다. 정치공방을 사법부의 판단에 맡긴 것이다. 그러나 정치에 개입하지 않으려는 사법부의 체질과 관행으로 볼 때 어느 세월에 결판날지 알 수 없다.

문제는 경제다. 정치현안이 난마처럼 얽혔다고 추경예산안 처리까지 마냥 미룰 수는 없다. 우선 추경안이라도 분리처리해야 한다. 국민회의는 추경안부터 다루자고 제의했으나 한나라당은 추경안을 다시 내라고 요구하며 분리처리에 반대하고 있다. 여기에는 예산안 시정연설을 누가 하느냐, 즉 김총리서리를 어떻게 할 것이냐에 대한 당략도 깔려 있다. 그래서 자민련도 분리처리에 반대하지만 명분상으로는 한나라당 주장이 옳다. 정부조직과 경제지표 및 경제정책의 우선순위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정부여당은 추경안을 새로 내는 성의를 보여야 한다. 한나라당은 과거 야당식의 연계처리전략을 버리고 분리처리에 동의하는 것이 이성적이다.

3당 원내총무회담은 이런 문제들을 푸는데 이미 한계를 드러냈다. 본란은 전권을 가진 여야 동수(同數)의 중진회담을 열어 모든 현안을 논의하도록 촉구했으나 한나라당이 거부했다. 한나라당은 중진회담을 수용하기 바란다. 여권은 한나라당의 거부가 집권측에 대한 불신과 피해의식에서 나왔다는 점을 이해해 이를 불식하도록 노력해야 옳다. 대치정국은 여야가 어떻게든 머리를 맞대고 대화로 풀어야 한다. 정치가 막히면 나라는 구렁텅이에 빠지고 국민은 정치권의 책임을 준엄하게 물을 것이다. 대한민국은 정치인들만의 나라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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