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육정수/「인재 지역할당제」

  • 입력 1998년 3월 6일 20시 11분


▼중국 명나라 초기인 1397년 지금의 고시(高試)에 해당하는 진사(進士)시험에 남방출신만 52명이 합격했다. 당시 남방과 북방간의 지역갈등이 극심하던 터라 이는 큰 ‘사건’이었다. 황제는 편파적인 결과라며 재시험을 명령했다. 첫 시험때 수석합격자가 두번째 시험에 또 합격하자 황제는 수석합격자와 시험관을 모두 죽였다. 그런 뒤 답안지를 직접 검토해 북방출신으로만 61명을 새로 뽑았다.

▼이 사건은 경제 문화 등 지역간 불균형뿐만 아니라 진사시험 때마다 남방출신이 휩쓸자 국가적 논란이 계속되던 중 발생했다. 마침내 28년 뒤인 1425년부터 남북권분취제(南北卷分取制)라는 지역할당제를 채택했다. 최종선발에서 남북방 출신을 6대4의 비율로 뽑는 제도였다. 그후 남북과 중부의 세 권역으로 나눠 할당하는 제도로 바뀌어 청나라 초까지 근 3백년간 이어졌다.

▼조선시대 과거시험의 문과(文科)에서도 1차시험에 한해 지역할당제가 실시됐다. 왕조시대의 지역할당제는 명분상 인재의 지역간 불균형을 정치적으로 고쳐보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깊이 들여다보면 모든 지역 대표를 통치조직에 균형있게 참여시켜 중앙집권적 통치권을 강화하기 위한 방편이었던 셈. 이번에 여야의원 45명이 낸 사법시험 등 9개 국가고시의 지역할당제 법안은 어떻게 봐야 할까.

▼서울의 비대화를 막고 지방발전을 위해 할당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에 일리가 없는 건 아니다. 외국에도 인종이나 남녀 평등을 명분으로 한 할당제는 더러 있다. 반면 역(逆)불평등을 내세운 위헌시비도 끊이지 않는다. 법은 우선 헌법정신에 맞아야 합법성이 인정된다. 인재의 지역할당제는 평등권과 기회균등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비판을 염두에 둬야 한다.

육정수<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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