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한나라당 이럴 수 있나

  • 입력 1998년 2월 25일 19시 56분


‘김종필(金鍾泌)국무총리’ 임명동의를 위해 소집된 국회가 유회돼 국정표류가 불가피해졌다. 한나라당이 인준거부 당론을 관철하기 위해 국회에 집단불참했기 때문이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취임하는 날, 국민도 국난극복에 동참하려는 각오를 새롭게 다진 바로 그날 국회는 이 모양이 돼버렸다.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한나라당은 이 나라를 어디로 끌고가려 하는가. 총리인준이 일단 유산됨으로써 김대중정부는 출범 첫날부터 심대한 타격을 받았다. 여소야대의 시련이 너무 빨리, 그리고 너무 심각한 형태로 김대중정부를 덮쳤다. 이로써 총리가 없고 각료제청도 이뤄지지 못해 새 정부의 국정운영은 뒤죽박죽이 됐다. 김대통령은 각 부처 차관부터 임명하는 방법을 검토한다지만 그렇게 해도 일을 제대로 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게다가 정부조직법이 발효되지 못해 김영삼(金泳三)정부의 각료들이 얼마간 자리를 유지하는 기형적(畸形的) 상태를 감수해야 할지도 모른다. 무엇보다도 경제난국에 국정공백과 정치불안까지 겹쳐 경제위기를 더욱 심화시키는 악순환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국가경제를 돕기 위해 아이들 백일반지까지 꺼내고 있는 국민은 깊은 배신감을 안게 됐다. 한국에 대한 외국의 신뢰 또한 다시 낮아질지 모른다. 경제파탄에 상당한 책임을 져야 할 한나라당이 이 중대한 시기에 이런 태도를 보일 수 있는지 우리는 이해하기 어렵다. 한나라당은 사태악화의 책임을 어떻게 지려 하는가. 한나라당은 각성해야 마땅하다. 본란이 이미 지적했듯이 국민이 선거를 통해 선택한 대통령의 첫 내각 구성은 일단 도와주는 것이 선거에서 패배한 정당의 도리이며 선거결과에 승복하는 자세다. 더구나 지금은 ‘3월 대란설’이 오히려 확대재생산되는 시점이다. 그럼에도 첫 총리 인준에서부터 의석수를 내세워 정치시위를 벌인 것은 집권경험을 가진 거대야당이 취할 성숙한 자세가 아니다. 그것도 새 대통령 취임식이 끝나기가 무섭게 발목을 잡고 나선 것은 비열하다. 한나라당은 이런 식으로 총리인준 거부에 성공한다고 해서 그것이 자신들의 승리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다수 국민은 한나라당의 처사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잊어서도 안된다. 한나라당은 이제라도 당론을 철회하고 빨리 국회에 출석해 총리인준에 당당하게 임해야 한다. 인사안건은 무기명 비밀투표로 처리하도록 규정한 국회법에 따라 인준에 대한 찬반(贊反)은 의원 개개인의 판단에 맡기는 것이 옳다. 그것이 나라를 살리고 한나라당도 살리는 길이라고 본다. 이번 사태가정국에 예기치 못한 격랑을 몰고 올수도 있다는 점을 우리는 우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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