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권순활/日 「아라이 죽이기」 자성

  • 입력 1998년 2월 24일 19시 51분


24일 낮 도쿄(東京) 이케가미 혼몬지(池上本門寺)에서 열린 한국계 일본중의원 4선의원 아라이 쇼케이(新井將敬)의 영결식. 아라이의원이 유서를 그에게 남길 만큼 친분이 있었던 가메이 시즈카(龜井靜香)의원은 우인(友人)대표 조사에서 ‘돌아올 수 없는 길’로 아라이를 몰고 간 일본사회의 분위기를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자네는 사랑했던 일본으로부터 극심한 모욕을 받고 무인(武人)의 방법으로 삶을 마감했네.” 장의위원장인 미쓰즈카 히로시(三塚博)전대장상도 “주식거래 의혹을 받아 얼마나 심한 충격을 받았을까. 심적 갈등과 고뇌는 상상을 초월했을 것”이라고 애도했다. 19일 아라이의원의 자살 후 검찰수사 및 언론보도가 지나치게 편파적이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차명거래를 통한 자금마련이라는 행위를 정당화할 수는 없지만 형평성 면에서 ‘아라이 죽이기’가 너무 심했다는 자성이다. 특히 재일동포사회는 일본사회의 높은 벽과 차별을 새삼스레 실감하면서 깊은 좌절감을 느끼고 있다. 자기편(우치·內)과 남(소토·外)을 엄격히 구분하는 오랜 전통을 가진 일본에서 한국인은 귀화했더라도 ‘내 편’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상징적 사건’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재일(在日)한국부인회 김정자(金定子)회장의 말은 동포의 울분을 대변한다. “죄는 죄, 조사받거나 체포되더라도 어쩔 수 없다. 그러나 노무라(野村)증권의 VIP계좌가 1만개에 이르고 관련정치인 명단까지 보도된 상황에서 왜 아라이만 ‘부패정치인의 표상’처럼 매도돼야 했는가.” ‘아라이는 희생양으로 선택됐다’는 이들의 심정을 ‘소수자의 피해의식과 과민반응’으로만 치부할 수 있을까. 권순활<도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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