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교수 장롱 속의 5만 달러

  • 입력 1998년 2월 15일 21시 01분


교수채용비리사건과 관련돼 구속된 서울대 치과대교수가 미화 4만9천여달러와 일화 60만엔, 금거북 등 금붙이 20여점을 집안 장롱 속에 꽁꽁 숨겨두었다가 적발됐다는 충격적인 보도다. 일부 사회지도층과 소위 ‘가진 자’들의 도덕불감증이 이 정도라니 허탈해지기까지 한다. 처음 서울대 치대 교수채용비리가 알려졌을 때 시중에서는 ‘돈을 줘야만 대학교수가 된다는 것을 지금껏 몰랐단 말이냐’는 시큰둥한 반응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문제의 교수 집에서 거액의 외화와 금덩이가 발견됐다는 소식에 많은 시민들은 일손을 놓고 분노하고 있다. 지금 온 국민은 외환위기로 하루 아침에 절단난 나라를 구하기 위해 모든 고통을 감내하고 있는 중이다. 오직 나라를 살려야 한다는 마음으로 서민들은 돌반지 결혼반지까지 내놓고 코흘리개 초등학생들까지 1달러모으기운동에 나서고 있다. 이런 판에 터져나온 것이 대학교수의 감춰둔 외화와 금붙이다. 금모으기 달러모으기에 동참하고 있는 다수 국민들로서는 맥빠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검찰은 적발된 거액의 달러가 교수지원자로부터 뇌물로 받은 7만달러 중 쓰고 남은 것이며 일화 60만엔은 문제의 교수가 일본에 유학중인 아들을 만나러 갈 때 쓸 요량으로 환전해 놓았던 돈이라고 밝혔다. 또 2백여돈쭝에 달하는 금붙이는 그동안 제자 등으로부터 선물로 받은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어떤 설명과 변명으로도 이 ‘부도덕’한 행위는 용서받기 어렵다. 서민들이 앞장서서 벌이고 있는 금모으기 달러모으기운동을 지식인이며, 가졌다는 사람이 외면했다는 것은 나라야 어찌되든 나 혼자, 내 가족만 잘 살아보겠다는 이기적인 심보가 아니고 무엇인가. 무엇보다 눈물겨운 애국심을 발휘하고 있는 서민들이 느낄 배신감을 어떻게 달랠 수 있을 것인지 걱정이 앞선다. 이번 사건으로 뇌물에 달러가 이용되고 있다는 점도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그동안 공직사회 등의 인사와 이권청탁에 자금출처 추적이 어려운 달러가 뇌물로 선호되고 있다는 말이 나돌았다. 이번 사건은 그런 소문이 결코 헛소문이 아님을 알게 해준다. 우리가 겪고 있는 IMF위기는 결코 돈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 함께 살자’는 국민 모두의 철저한 공동체의식 회복 없이는 극복할 수 없다. 그 맨 앞줄에 서야 할 사람들이 다른 사람이 아닌 사회지도층과 지식인들이어야 한다. 이번 치과대교수의 장롱 속에 숨겨둔 거액외화와 금붙이가 그런 국민적 결속을 외면하고 있는 일부 가진 사람들에게 조그만 경종이라도 울려준다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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