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낙연/거리의 정보원

  • 입력 1998년 2월 4일 20시 06분


▼‘독일 국민은 모두 경찰관’이라는 말이 있다. 한적한 길에서 작은 교통위반을 해도 누군가 고발한다. 집안에서 부부싸움을 좀 크게 해도 이웃에서 경찰에 알린다. 심지어는 초저녁에 부모가 어린 자녀의 손목을 잡고 길을 걸어도 이를 본 사람이 신고한다. 어린이가 밖에 나와 있을 시간이 아니라는 것이다. 독일의 사회질서 유지에는 이런 ‘국민 경찰관’들이 큰 몫을 한다. ▼이번 반도체기술 산업스파이들은 택시운전사의 신고로 붙잡혔다. 택시안에서 그런 얘기를 주고 받은 사람들을 운전사가 당국에 신고한 것이다. 재작년 강릉 앞바다에 북한 잠수함이 침투했을 때도 맨처음 발견해신고한사람은택시운전사였다. 택시운전사가 격투 끝에 강도를 잡았다는 소식도 심심찮게 보도된다. 온갖 것을 보고 듣는 ‘거리의 정보원’들이 국가와 사회의 파수꾼 역할도 하는 셈이다. ▼역기능(逆機能)도 있다. 지난해 대통령선거 때 택시운전사 등으로 구성된 각 정당의 ‘구전(口傳)홍보단’은 흑색선전의 확산경로가 되기도 했다. 유신시대에는 체제를 비판하거나 박정희(朴正熙)대통령을 모독했다고 해서 승객을 신고하거나 아예 경찰서까지 태우고 가는 택시운전사도 있었다. 그 대가로 개인택시면허를 받기도 했다. 친구와 술한잔 마시고 택시를 함께 타도 운전사의 눈치를 살피고 말조심을 해야 한다면 그건 각박하다. ▼그럼에도 택시운전사를 포함한 서민들의 애국심은 든든하다. ‘금모으기 운동’에 금괴는 별로 안 나오지만 결혼반지 돌반지 백일반지는 많이 나오는 것도 이를 증명한다. 국난에 처할 때마다 우리 국민은 모든 것을 던져 구국의 대열에 나섰다. 얼마 전 서울에 왔던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 특사 리처드 홀브룩은 “한국의 가장 큰 힘은 국민의 애국심”이라고 말했다. 이낙연<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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