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현철씨의 돈세탁놀이

  • 입력 1998년 2월 3일 20시 28분


김현철(金賢哲)씨가 92년 대선때 쓰고 남은 50억원을 안기부의 비공식 비밀계좌를 활용해 세탁했다는 보도다. 사실이라면 보통 문제가 아니다. 안기부는 문제의 계좌를 “안기부 공금계좌로 단정할 수는 없다”고 해명했다. 공금계좌가 아니라면 국가의 핵심 정보기관인 안기부도 현철씨에게 이용당한 피해자라는 얘기가 된다. 국가안보라는 막중한 임무를 맡고 있는 안기부가 이렇게 어이없이 한 개인에게 농락당한 것은 안기부의 조직관리에 큰 문제가 있음을 말해준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현철씨가 50억원을 불법적으로 실명전환한 시기는 아버지인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이 금융실명제의 정착을 위해 애쓰던 때다. 아버지가 실명제를 뿌리내리기 위해 노심초사하고 있는 동안 아들은 이를 비웃고 있었던 것이나 다름없다. 현철씨가 안기부를 농단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측근인 김기섭(金己燮)씨가 당시 안기부 기획조정실장 자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김영삼정권 하에서 개인적 인연으로 안기부 간부로 발탁된 뒤 운영차장으로까지 승진하면서 조직보다는 개인에게 충성을 바쳤다. 안기부의 핵심간부가 이렇게 임용되고 그 핵심간부가 자신을 출세시켜준 은인에게 충성을 다 하는, 이런 식의 인사관리가 가능했다는 것은 새삼스레 통탄할 일이다. 현철씨는 안기부의 조직과 업무의 특성인 ‘비공개’ ‘비밀’ ‘보안’ 등을 십분 활용했다. 즉 불투명성을 이용해 안기부를 사유화하고 범죄수단으로 악용한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그가 이용한 ‘문화사’명의로 된 안기부 기조실 계좌는 은행측이 특별관리를 해왔다고 한다. 현철씨는 그 덕분에 세무당국과 수사기관의 추적을 피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안기부의 특별보호를 받으며 돈세탁했다는 얘기가 된다. 당시 돈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무서워했던 금융실명제가 권력 앞에서는 한낱 종이호랑이에 불과했음을 말해준다. 현직 대통령의 아들이라고 해서 법의 세계 밖에서 멋대로 행동하는 것을 묵과해서는 안된다. 현직 대통령의 아들이라는 특수신분을 이용한 축재는 끝까지 추적해 회수해야 한다. 현철씨의 경우 수사과정에서 70억원을 국가에 헌납하겠다고 각서를 썼으나 검찰은 아직 한푼도 확보하지 못한 실정이다. 헌납의사가 아니더라도 이 돈은 범죄와 관련돼 있는 만큼 반드시 국고에 환수돼야 마땅하다. 현철씨는 50억원을 돈세탁해 기업에 투자했다고 하나 그 돈은 현재 온데간데 없다. 검찰의 철저한 추가수사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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