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교육 ④]물꼬학교/자율교육 「물꼬」 튼다

  • 입력 1998년 2월 2일 07시 41분


“얘들아, 저 아이 돈 좀 있어 보이잖니. 요즘 인기 있다는 이스트팩 저것만 빼앗아도 되겠다.” 험악한 인상의 10대 불량소년 3명이 버스정류장에서 어슬렁거리다 대상을 찾은 듯 집으로 돌아가던 철수를 불러세운다. “저기 서, 너 좀 보자. 할 얘기가 있어.” “왜 그러는데. 여기서 얘기해.” “말귀를 꽤 못 알아듣네. 줄 건 얼른 주고 꺼지란 뜻이야.” “버스표밖에 없어요.” 불량배들은 가방을 빼앗아 뒤적이다 “공부 못하는 게 책만 많아”라며 철수를 윽박지른다. “오늘 우리를 이렇게 수고하게 했으면 뭐가 있어야지. 너, 내일 이 시간에 돈 갖고 여기로 안나오면 어떻게 되는 줄 알지, 응.” “알았어요.” 본때를 보인다며 불량소년들은 철수를 무릎꿇린 뒤 돌아가며 발길질한다. 그러나 행인들은 애써 외면하며 그냥 지나친다. 영희 아빠도 본척 만척 지나가며 혀를 찬다. “아들자식이 없어서 다행이야. 요새 머슴아들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저렇게 날뛰니…. 도대체 부모가 애들 교육을 어떻게 시키길래…. 쯧쯧쯧.” 코피 투성이의 철수가 ‘클레멘타인’의 가사를 바꾼 노래를 바이올린 연주에 맞춰 처량하게 부르면서 막이 내린다. “어제도 학교에서 이런 일이 있었어요. 담배를 구해오라며 불려가서 맞았죠. 지나가던 아이들이 다 보고 있었지만 누구 하나 나서서 말리는 사람이 없었어요.” ‘폭력배도 우리 아이들’이란 이 연극은 학교폭력에 무관심하던 영희 아빠가 자신의 딸이 구타당한 뒤 폭력추방운동에 앞장서 불량청소년들을 선도한다는 줄거리. ‘자유학교를 준비하는 모임 물꼬’가 1월25일 서울 홍익대 학생회관 소극장에서 가진 공동창작극 발표회에는 1백여명의 학부모가 참석했다. 발표회에 참석한 학부모들은 평소 자녀문제에 소홀했던 자신들의 태도를 반성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숙연한 모습이었다. 서울 마포구 동교동 네거리에 위치한 물꼬학교. 언뜻 보면 놀이방과 비슷하지만 이를 꾸려가는 일꾼들에게는 푸른 꿈이 있다. 교육의 물꼬를 튼다는 이름에서 보듯 틀에 얽매이지 않고 아이들이 마음놓고 뛰어놀 수 있는 ‘자유학교’를 2004년 충북 영동에 자신들의 손으로 세우겠다는 ‘꿈’을 갖고 있다. 89년 글쓰기 모임인 ‘열린 글, 나눔 삶터’를 모태로 출발한 물꼬는 방과 후 공부와 계절학교 형태로 아이들을 만난다. 방과 후 프로그램은 ‘글터’ ‘그림터’ ‘연극터’가 있다. 매주 한차례 모둠(조)별로 각각 정해진 요일에 그동안의 일을 이야기하며 자기 수준에 맞는 공부를 한다. 과외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 어린이들이 창의적이고 자율적으로 공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적. 초등학교 1∼6학년생들이 한데 어울려서 활동한다. ‘글터’는 교사들이 학생들의 집으로 찾아가 가르친다. 4,5명씩 한집에 모아 동화책 읽기와 일기쓰기를 하며 토론식으로 진행한다. 6개월 과정의 ‘연극터’는 주1회 2시간씩 수업을 하며 기수별로 연극발표회도 갖는다. 수업 내용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이야기를 찾아내 직접 극으로 꾸민다. 대본이며 배역 정하는 것도 아이들 스스로 머리를 맞대고 결정한다. 매끈하진 않지만 아이들의 기발한 아이디어에 혀를 내두를 정도다. 짜여진 틀에 자신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항상 자신이 중심이 된다. 일요일마다 박물관 국립극장 전쟁기념관 같은 곳을 찾는 ‘들공부’도 큰 인기. 물꼬의 학생들은 다양하다. 서울은 물론 수도권에서도 ‘입 광고’를 통해 찾아오는 사람들이 꽤 많다. 매주 금요일 경기 의왕시에서 연극을 배우러 오는 조운지양(9·초등교 2년)은 왕복 5시간이나 걸리지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빠진 적이 없다. “학교에서는 매일 공부만 하라고 하는데 여기서는 선생님들이 사랑으로 감싸주고 마음놓고 활동할 수 있어 너무 즐거워요.” 물꼬는 여름 겨울방학을 이용해 4∼6일 동안 산이나 바닷가에서 계절학교를 운영해왔다. 지난해부터는 ‘자유학교’가 들어설 충북 영동에서 열고 있다. 올겨울 세차례를 포함, 모두 14차례나 열렸다. 달동네와 고아원 어린이들을 무료로 가르치는 것도 물꼬의 중요한 사업중 하나. 물꼬는 두레일꾼(교사) 6명, 품앗이 일꾼(때때로 교사) 1백30명, 논두렁(후원자)회원 1백50명이 꾸려간다. 지금까지 물꼬를 거쳐간 학생만도 1천5백여명. 이들이 새로운 교육의 지평을 열 날은 언제일까. 물꼬학교 연락처는 02―3141―1002. 〈이인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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