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위험한 「권력의 함정」

  • 입력 1998년 1월 7일 20시 44분


▼‘혁명아 자파타’라는 미국영화가 있다. 감독 엘리아 카잔, 각본 존 스타인벡. 금세기초 멕시코 농민혁명가 에밀리아노 자파타의 생애를 그린 1952년 작품이다. 1994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발효에 항의해 무장봉기했던 자파티스타도 자파타의 추종자들이다. 긴 세월이 흘렀어도 그는 여전히 멕시코 농민들의 추앙을 받는다. ▼자파타(말론 브랜도)는 혁명에 성공한다. 덕분에 그의 동생 유페미오(앤서니 퀸)는 장군이 돼 남의 땅과 여자를 빼앗는다. 자파타는 이를 꾸짖는다. 유페미오는 “나는 장군이지만 가진 것은 먼지뿐이다. 데킬라 한 병 살 돈도 없다. 나도 인간이다”고 항변하지만 분노한 농민의 총에 맞아 죽는다. 자파타는 권좌를 마다하고 농민들의 곁으로 돌아온다. 그는 “여러분은 결점이 없는 지도자를 찾는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없다. 사람은 누구나 변한다”고 고백한다. 혁명도 성취되는 그 날부터 ‘권력의 함정’에 빠진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김영삼(金泳三)정부도 초기에는 도덕적 긴장감을 가졌다. 김대통령이 “재임중에 한푼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공직자 골프를 사실상 금지하던 무렵부터 1년가량은 그랬다. 당시 김대통령 주변인사들은 권력자로 불리는 것 자체를 싫어할 정도였다. 그러나 그들은 곧 이완됐다.‘권력의 함정’에 빠진 것이다. 김대통령의 실패는 그때 이미 예비됐는지도 모른다. ▼김대중(金大中)차기대통령이 “취임 이후 나에게 ‘각하’란 호칭은 쓰지 않는 게 좋겠다” “관공서에 대통령 사진을 걸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정권인수위에 말했다.탈(脫)권위의 신선한 발상이다. 문제는 그런 자세가 얼마나 넓게 퍼지고 길게 갈 것이냐다. 차기대통령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도 ‘권력의 함정’을 항상 경계해야 한다. 〈이낙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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