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자 노트]김세원/조금씩 철학자가 되자

  • 입력 1997년 10월 25일 07시 14분


『무슨 낙(樂)으로 살아가세요』 내겐 사람들에게 불쑥 이런 질문을 던져 고민하게 만드는 짓궂은 취미가 있다. 난데없는 질문에 대개는 당황해하면서 작은 목소리로 앞으로의 바람이나 꿈을 말한다. 그게 아니라 당신의 하루하루를 지탱해주는 힘이 무엇이냐고 다시 물어보면 그런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대답이 주류를 이룬다. 사실 나도 그랬다. 대학시절까지는 크고 작은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향해 나아가기 바빴고 신문사에 들어와서는 맡겨진 일들을 해내기에도 벅차 자신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그러다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된 것은 언젠가 빗질을 하다가 발견한 흰 머리카락들 때문이다. 처음엔 새치려니 여겼는데 그게 아니었다.여기저기 헤집어 보니 곳곳에 흰 머리카락 투성이이고 눈가에도 자글자글하게 잔주름이 잡혀 있었다. 남들 눈에는 환히 보이는 세월의 나이테를 혼자만 모르고 있었던 거다. 그 순간 자신에게 남아있는 시간 중에서 주어진 능력을 발휘하면서 온전한 인간으로 살 수 있는 날이 그렇게 길지 않다는 사실이 아프도록 가슴을 쳤다. 내앞에 펼쳐질 삶이 미래에 대한 기대로 충만한 장밋빛에서 지나온 추억에 기대 살아가는 회색빛으로 바뀌게 된다니,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막연한 불안과 초조의 근원이기도 했던 「늙는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된 것은 「행복의 발견」이란 한 권의 책 덕분이었다. 저자는 살아있는 한 아무도 상실(喪失)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오늘을 담보하는 대신 하루하루의 삶에 최선을 다하고 거기서 행복을 찾으라고 권한다. 「일에 얽매이지 말라」 「너무 완벽을 추구하지 말라」 「자아를 혹사하지 말라」 「자신의 낭만적인 충동을 인정하라」 「때로는 땡땡이를 치라」 등이 그가 주는 충고다. 낙엽이 포도(鋪道)위를 구르는 아침저녁으로 스산한 바람이 코트깃을 파고들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조금씩 철학자가 된다. 머잖아 사라지기에 단풍으로 곱게 물든 풍경이 더욱 소중하고 아름다운 이 가을이야말로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기에 좋은 계절이 아닐까. 『당신은 무슨 즐거움으로 삽니까』 김세원<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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