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미츠 힐의 KAL기 추락사고 현장에서 날아온 사진 한 장이 온 국민을 분노에 떨게 했다.
산산조각이 난 사고기 잔해,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는 처참한 시신들, 저멀리 통제선 밖에서 들려오는 유족들의 오열….
이런 처절한 광경을 뒷전으로 한 채 일렬로 늘어서서 기념촬영을 하는 신한국당 의원 방문단의 태연한 모습. 이 사진이 신문에 공개되자 분노에 찬 독자들의 항의전화가 빗발쳤다.
『도대체 뭐 하는 사람들이냐』 『희생자들을 두번 죽이려는 거냐』 『의원 이름을 밝혀라』 등등. PC통신의 신한국당 「이야기 광장」에 오른 젊은 세대의 목소리도 격분과 냉소로 가득찼다. 『이제 저 사람들은 더이상 국민의 대표가 아니다』 『같은 의원이 숨진 그 자리에서 사진촬영을 하다니…』 『당신같은 의원을 뽑은 우리가 참으로 참으로 자랑스럽다』….
사진에 나타난 신한국당 의원들은 李海龜(이해구)정책위의장 趙鎭衡(조진형)재해대책위원장 朴世煥(박세환)의원 등 3명. 아마도 이들은 당의 공식대표단으로서 「조사활동을 다녀왔다」는 기록용 사진을 남기기 위해 「그저 하던대로」 사진촬영에 응했을지 모른다. 『자료사진을 찍은 것이다』 『현장확인사진이 필요했던 것 같다』는 게 의원들의 얘기다.
자료사진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알 수 없으나 일렬로 늘어서서 사진을 찍을 만한 상황이 있고 그렇게 해서는 안될 상황이 있다. 적어도 한 나라의 「선량(選良)」이라면 그 정도 분별력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온 국민의 마음은 안타깝고 착잡하기 짝이 없다. 정부의 무기력하고 무성의한 태도 등 현지에서 들려오는 소식마다 가슴을 답답하게 하기 때문이다. 신한국당 의원들 자신도 이미 현지에서 유족들에게 멱살잡이를 당하는 등 원망을 듣지 않았는가.
사고 발생 나흘만에 이뤄진 신한국당 방문단의 「지각파견활동」은 결국 사고수습에 별다른 도움을 주기는커녕 유족들의 슬픔만 더 북받치게 한 채 끝나고 말았다.
李院宰 <정치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