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남북관계의 위기

  • 입력 1997년 2월 17일 20시 15분


남북한 관계가 최악의 사태다. 어느 때보다도 철저한 대비가 필요한 시기다. 북한 金正日(김정일)의 처조카 李韓永(이한영)씨가 서울에서 피격된 것은 북한 노동당 비서 黃長燁(황장엽)씨가 북경주재 한국대사관에 망명을 요청한 바로 사흘 뒤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 누구에게나 테러를 가할 수 있다』고 김정일이 호언했다는 보도도 있고 보면 궁지에 몰린 평양정권이 무슨 행동을 어떻게 할지 예측하기 어렵다. 더구나 황씨는 자신 외에도 북한의 고위급간부 5∼7명이 망명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사실이라면 이 또한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황씨 망명요청 하나만으로도 남북관계가 이렇게 긴장 국면인데 거기에 5∼7명이 추가로 망명을 결행하는 일이 벌어진다면 그때의 남북관계와 한반도 안보상황이 어떨지는 짐작하고도 남는다. 북한의 국지적(局地的) 도발을 비롯해 모든 최악의 사태까지도 상정, 대비해야 할 때다. 북한은 비록 경제파탄과 식량난에 허덕이고 있지만 막강한 군사력을 갖고 있다. 그들의 도발이 언제라도 가능한 게 지금의 한반도 상황임을 명심해야 한다. 상황이 이렇고 보면 정부가 대북(對北)경수로 건설사업과 경협 식량지원사업 등 기존의 대북한정책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신변에 어떤 위해가 있을지도 모르는 마당에 우리의 경제인이나 경수로사업 기술진들이 어떻게 북측과 접촉할 수 있으며 북한땅에 안심하고 들어갈 수 있겠는가. 지금 북한은 이성을 잃고 막가는 집단처럼 보인다. 남한내 탈북 귀순자에 대한 테러를 서슴지 않겠다는 터에 입북(入北)한 우리 경제인이나 기술자들을 인질로 삼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지금의 이 안보위기상황을 맞아 무엇보다 정부는 국방태세 강화와 치안에 주력해야 하며 정치인들도 정신을 차려야 한다. 북이 도발적인 자세를 노골적으로 드러내 보이며 경고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데도 언제까지 황씨 망명신청을 둘러싸고 정파(政派) 이기주의에만 빠져 있을 것인가. 여야는 우선 한보(韓寶)비리의혹사건과 황씨 망명사건으로 비롯된 안보문제를 분리해야 한다. 각각 별개의 사안으로 따지고 대응책을 마련하되 정략적인 해석이나 계산을 해서는 절대로 안된다. 혹시라도 안보위기 상황을 두고 대선을 겨냥해 유불리(有不利)를 저울질하는 정파나 정치인이 있다면 국민들이 심판할 것이다. 나라의 안위(安危)가 걸린 문제에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 황씨의 망명과 이씨의 피격사건으로 인한 최근의 한반도 상황은 어느 때보다도 불안정하고 불확실하다. 정치인들은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 무엇보다도 나라 장래를 생각해야 한다. 지금은 모두가 국민적 지혜를 모아 안보위기상황에 대처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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