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핵쓰레기」이기는 길

  • 입력 1997년 2월 3일 20시 07분


북한이 펴낸 「력사(歷史)사전」은 대만을 이렇게 적고 있다. 「1949년 중국 인민혁명의 승리와 함께 패망한 장개석 국민당 반동군벌의 나머지 무리들이 쫓겨가 미제(美帝)를 등에 업고 둥지를 틀고 있는 곳이 대만이다. 대만을 강점한 미제국주의자들은 오늘날 두개의 중국을 꾸며내려는 흉악한 책동을 감행하고 있다」. 평양의 사회과학원이라는 데서 나온 책의 571쪽에 보면 분명 그렇게 적혀 있다. 북한이 바로 그 대만, 「반동 무리들의 둥지」에서 생긴 원전(原電)폐기물을 달러 몇닢 벌기 위해 사들이기로 했다. 진정 카를 마르크스가 강조했던 공산주의에도 「현실은 중요하다」는 대목을 생각케한다. 생각해 볼수록 어지럽다. 미제와 중국 인민은 손잡은지 오래다. 한국도 중화민국(대만)의 손을 놓아버린지 오래다. 교전상대였던 중국과 손잡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대만이 토라지고, 하필 북한과 손잡고 한반도에 원전쓰레기를 팔아치우는 보복에 나섰다. 동지도 원수도 바뀌고 잊혀지는 제행무상(諸行無常)의 이 세기말이 어지럽다. 원전 쓰레기 문제 자체도 그렇다. 북한내에 묻는 것을 한국이 반대하고 미국이 우려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중국정부도 대만을 비난하며 반대하는 입장에 서는 것을 보면 세월의 격변이 살갗에 와닿는 느낌이다. 어지러운 세상일수록 중심이 잡혀야 돌파할 수 있다. 차갑고도 분명한 계산이 필요하다. 감정이나 정서에 호소하고 불지르는 식이어서는 자가당착(自家撞着)이 될 가능성조차 있다. 그래서 원전 폐기물의 위험을 지나치게 과장해서는 안된다. 대만과 북한사이에 거래하기로 한 폐기물은 저준위, 즉 장갑이나 작업복 걸레 교체부품같은 것들이다. 이런 것들은 별로 위험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우리 한전도 정부도 누차 발표하고 「홍보」해 왔다. 관리수칙을 지키기만 한다면 위험성은 낮은 것이다. 그래서 외무부도 국제법상의 문제가 되지 못하므로 외교적으로 막아나가겠다고 밝혔다. 반핵 환경단체의 입장이라면 원천적으로 다르겠다. 그러나 원전을 불가피한 에너지원, 혹은 필요악이라고 인정한다면 남의 원전에서 나온 장갑은 살상(殺傷)무기 같은 것이고, 내 원전에서 나온 것은 무공해라는 식의 외침은 억지다. 위험성이 낮다고 해서 대만과 북한을 압박하는 명분이 엷어지거나 수단이 약해지는 것도 아니다. 태평양 가운데 마셜군도가 그런 원전 쓰레기장으로 달러 벌이를 하려다 호주 뉴질랜드 등 이웃나라들의 반대로 꺾인 일도 있다. 그리고 북한은 우리가 굴업도 폐기장을 추진할 때 반대 투정을 부린 일조차 있다. 또 리우 환경회의에서도 원전폐기물의 자국내 처리가 천명된 바 있다. 이성과 과학으로 설득하고 따져도 이웃 나라들의 성원을 얼마든지 얻어낼 수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민족주의적 자세로 해결하려는 것도 마찰만을 부른다는 점이다. 하필이면 북한에 버린다는 말이냐 하고 남의 국기를 불사르는 식으로는 해결책이 나오기 어렵다. 민족주의는 불가피하게 타국과의 감정적 마찰을 부른다. 일본 극우 세력의 섬나라안의 절규가 얼마나 아시아국가들의 민족감정을 자극하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북한은 세상이 다 변해도 「우리식대로 살자」고 외치다가 결국 환경까지 파는 사태에 이르렀다. 국제사회의 지지를 통해 대만과 북한을 제압해 나가는 것이 원칙이고 그런 길은 열려 있다. 김충식(정보과학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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