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窓]『논밭팔아 중국집 차렸는데…』

  • 입력 1997년 1월 29일 20시 19분


[당진〓李基鎭기자] 『한보철강이 들어선다길래 논밭을 팔아 중국집을 차렸더니 이게 웬 날벼락이래유…』 충남 당진군 송산면 한보철강 당진제철소B지구 정문앞에서 중국음식점 「서해반점」을 운영하는 이종서씨(37)는 『재벌기업이 자신같은 영세상인에게도 이렇게 큰 피해를 안겨줄지는 상상도 못했다』며 넋을 놓았다. 이씨가 이곳에 40평짜리 중국집을 개업한 것은 지난해 5월. 평소 일구던 논밭을 팔아 간신히 5천만원을 마련, 부인과 함께 시작했다. 주요 고객은 현재 공사가 진행중인 한보철강B지구 하청업체의 노무자들과 이들은 감독하는 한보철강 직원들. 중국음식점이 한 곳뿐이어서 개업초기부터 장사가 잘돼 정신장애를 앓고 있는 딸(13)을 포함해 자녀 4명의 뒷바라지에 희망이 생겼다. 음식값 결제는 직원들이 식권을 가져오면 한달치를 모아 한보철강과 하청업체에 청구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8월부터 음식값이 절반씩만 결제되더니 12월부터는 아예 밀리기 시작했다. 이씨는 회사를 찾아가 외상값의 일부라도 갚아달라고 했으나 『조금만 기다려 달라』는 답변만 들었고 「단골손님」에게 심하게 재촉하기도 어려워 그냥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씨는 한그릇에 2천원인 자장면 외상값이 어느틈에 4천4백60만원으로 불어난 것을 한푼도 건지지 못한 채 한보부도라는 태풍앞에 생업의 터전을 잃어버릴 위기에 몰렸다. 부도이후엔 현금만을 받고 있으나 하청업체에 소속된 일용직노무자들이 한 두명씩 공사현장을 떠나면서 매상마저 절반이하로 줄었다. 『밀린 음식값은 고사하고 그간 우리식당에 재료를 공급해온 거래처외상값 2천만원은 어떡한대유. 그들이 우리보다 더 힘든 사람들인디…』 이씨의 힘없는 독백이 황량한 당진 거리로 퍼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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