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수필]시어머니와 피아노

  • 입력 1996년 11월 13일 20시 39분


초등학교 5학년 큰아들이 오래전부터 피아노를 사달라고 졸랐다. 사주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어서 선뜻 아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못한채 망설이고 있었다. 그런데 며칠사이 녀석의 피아노 타령은 부쩍 심했다. 자기가 학원에서 피아노를 제일 잘 치기 때문에 이번에 학원 대표로 연주대회에 참가하게 됐단다. 때문에 열심히 연습을 해야하는데 집에 피아노가 없어서 곤란하다는 얘기다. 피아노를 사주면 꼭 1등을 해서 보답하겠다고 졸랐다. 뻔한 형편에 덜렁 피아노를 사들일 수는 없어 남편과 상의, 중고를 사주기로 하고 며칠째 중고품가게를 기웃거리고 다녔다. 그런데 며칠전 퇴근하여 집에 들어서니 이게 웬일인가. 피아노소리가 들리는게 아닌가. 거실에 피아노가 떡하니 놓여있고 아들이 신나게 건반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것도 새 피아노를…. 『엄마, 할머니가 피아노 사주셨어요』 그 소리는 아득한 곳에서 들려오는 듯했다. 순간 가슴이 뭉클하고 무언가 뜨거운 기운이 얼굴에 확 스치는 느낌이었다. 시어머니가 2백만원도 훨씬 넘는 고가의 새 피아노를 손자에게 선물하셨던 것이다. 우리 부부는 맞벌이를 하기 때문에 두 아이들은 아기 때부터 어머니가 거둬주고 계신다. 그 고마움에 대해 몇푼 안되는 용돈으로 자식의 도리를 다했다고 생각해 왔는데…. 어머니는 그 몇푼의 용돈이나마 철따라 때따라 아이들의 옷가지며 김칫거리 반찬이며 남편의 보약 등을 짓는데 사용하셨다. 그런데 언제 그렇게 많은 돈을 모으셨을까. 후에 안 일이지만 그 돈은 5년여 동안 한푼두푼 용돈을 모은 당신의 전재산이었다. 잡숫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 참으시며 용돈을 쪼개어 저금을 하시다니…. 가슴이 저려온다. 『손자들 대학 등록금은 내 손으로 마련하고 싶었다. 그러나 피아노를 샀으니 이제 새로 모아야 겠다』고 하시는 어머니. 자식들을 위해 밤마다 새벽마다 기도하시는 어머니. 어머니, 사랑합니다. 김 혜 자(전북 군산시 경암동 652 연일아파트 50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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