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부터 꼬인 ‘클린스만 시대’…이름값이 전부가 아냐[남장현의 풋볼 빅이슈]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3월 7일 11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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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축구를 뜨겁게 달군 빅 이슈는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59·독일)의 국가대표팀 사령탑 선임이었다. 한 시대를 풍미한 유명 축구계 셀럽이 동아시아 국가로 향했다는 소식은 전 세계 외신이 실시간으로 다룰 만큼 상당히 ‘핫(Hot)‘한 뉴스였다.

조건도 나쁘지 않다. 대한축구협회(KFA·회장 정몽규)는 클린스만 감독에게 3년 5개월의 계약기간을 보장했다. 2026년 북중미 3개국(캐나다·미국·멕시코)에서 개최될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본선까지로, 사전 합의에 따라 공개되지 않은 연봉(추정치)은 파울루 벤투 전 감독(포르투갈)이 받던 130만 유로(당시 환율 약 18억1000만 원)를 크게 상회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주로 미국에 거주해온 그는 8일 입국해 계약서에 최종 사인한다.

독일축구 레전드 위르겐 클린스만(사진)이 한국축구를 이끈다. 그러나 선임 과정의 불필요한 잡음이 기대감보다는 불안감을 안겨주고 있다. AP 뉴시스
독일축구 레전드 위르겐 클린스만(사진)이 한국축구를 이끈다. 그러나 선임 과정의 불필요한 잡음이 기대감보다는 불안감을 안겨주고 있다. AP 뉴시스


하지만 마냥 호의적인 분위기는 아니다. 고약한 선임 과정 탓이다. KFA는 마이클 뮐러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회 위원장(독일)을 내세워 ‘포스트 벤투’ 선임 작업에 나섰으나 전력강화위원회는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았다. 박태하 프로축구연맹 기술위원장과 조성환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 이정효 광주FC 감독, 최윤겸 충북청주 감독 등 국내 축구 인들을 위원으로 위촉했으나 ‘소통’이라는 기본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뮐러 위원장은 위원들과 전혀 대화하지 않았다. K리그 구단들의 동계훈련으로 1월 25일 상견례를 겸해 화상으로 진행된 1차 회의는 “이런 후보들을 찾겠다”는 수준의 사실상 오리엔테이션에 가까웠는데, 그 후 아무런 이야기가 없다가 2월 27일 클린스만 감독의 선임 소식을 보도자료로 알리기 직전에야 위원들에게 통보해 빈축을 샀다.

더욱 기막힌 것은 이에 대한 해명이었다. 선임 발표 다음달(2월 28일) 기자회견을 연 뮐러 위원장은 ‘합의 과정’이라고 포장했다. 후보군 이름은 알리지 않았으나 첫 회의는 밑그림을 공유했고, 2차 회의를 통해 모두의 동의를 구했으니 문제될 것이 없다는 뉘앙스였다.

모든 걸 결정해놓고 통보받는 자리에서 “난 반대 한다”고 밝힐 바보는 없다. 물론 위원들 전원이 반대했더라도 ‘위원회’ 자체를 무시한 KFA가 이를 반영했을 리 없다. 이름값을 유독 좋아하는 축구계 누군가가 클린스만 감독을 강하게 원했고, 주변이 움직인 결과라는 것을 삼척동자도 잘 안다.

이렇듯 세상 어디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운 ‘불통’ 프로세스에 여론은 싸늘해졌다. 한국에 통산 3번째 월드컵 16강을 선물한 벤투 전 감독이 어떤 과정을 거쳐 뽑혔는지를 잘 아는 팬들의 분노는 굉장했다. 러시아월드컵 직후인 2018년 여름, 김판곤 전 위원장(현 말레이시아 감독)은 홍명보 전 KFA 전무(현 울산 현대 감독)의 적극적 지원을 받으며 신태용 전 감독(현 인도네시아 감독)의 후임자를 찾았는데 당시 위원회는 A부터 Z까지 모든 내용을 공유했다. 모든 구성원이 수백 편의 경기 영상을 돌려보고, 각종 테크니컬 리포트를 검토하며 머리를 맞댔다. 그렇다고 정보 유출이 이뤄진 것도 아니다. 거의 마지막까지 놀라울 정도로 보안이 잘 지켜졌다.

말레이시아로 향한 김판곤 감독이 KFA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회를 이끌었을 때만 해도 한국축구는 명확한 프로세스로 호평을 받았으나 지금은 여러 모로 아쉽다. 스포츠동아DB
말레이시아로 향한 김판곤 감독이 KFA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회를 이끌었을 때만 해도 한국축구는 명확한 프로세스로 호평을 받았으나 지금은 여러 모로 아쉽다. 스포츠동아DB


그런데 이번에는 어땠는가. 약간의 접촉 정황만 있어도 후보군이 실시간 공개됐다. 국내 미디어는 그럭저럭 단속했는데, 외신은 내내 떠들썩했다. 클린스만 감독도 공식 선임발표가 나오기 수일 전에 독일 축구전문지 키커가 이미 보도했다. 2차 회의에서 뮐러 위원장은 위원들에게 “그간의 언론 보도는 가짜”라고 해명했으나 떼지 않은 굴뚝에 연기는 쉽게 나지 않는 법이다. KFA는 위원들에게 정보 공유를 하지 않은 이유를 밝히지 않지만 ‘정보 유출’에 대한 우려가 그 중 한 가지였다.

그러다보니 클린스만 감독을 향한 불신이 한층 커졌다. 뮐러 위원장은 앞서 자신이 공개한 ▲전문성 ▲경험 ▲동기부여 ▲팀워크 ▲환경 등 5가지 선임 기준에 클린스만 감독이 부합되는지조차 설명하지 못했다. 안 그래도 성공적으로 보기 어려운 지도자 커리어를 걱정하는 팬들의 성토가 계속되는 마당에 부채질을 한 꼴이다.

1시간여 기자회견에서 동문서답을 반복하며 뮐러 위원장이 진땀 흘리는 동안, 모든 장면을 현장에서 지켜본 KFA 고위 임원들은 어느 누구도 취재진 앞에 나서지 않았다. 당당했다면, 또 떳떳했다면 한 마디 거들만도 한데 그들은 그렇지 않았다. 더 냉정히 말해 못했다.

요즘 KFA는 유독 헛발질이 잦아졌다. 국제 정세와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해 정몽규 회장은 도전장을 내미는 선거마다 낙선을 반복했고, 국제대회 유치경쟁에선 밀리기 일쑤다. 내치라도 단단하면 좋으련만 그렇지도 않다.

그간의 행보로 미뤄 짐작하면 클린스만 감독이면 팬들이 충분히 납득하고 좋아했을 것으로 판단했을 공산이 크다. 따라서 이런저런 말이 끊이질 않는 지금의 상황이 몹시 당황스럽고 부정적 여론이 야속할 수 있다. 하지만 이름값에 흥분하고 열광하는 시대가 아니다. 공정한 과정에 목말라하는 이들이 세상에 참 많다.

팬들은 클린스만 감독 자체가 불만스럽지 않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 밉고 싫을 이유는 없다. 유명세나 이름값만 보면 벤투 전 감독보다 훨씬 화려한 현역 시절을 보낸 클린스만 감독이 높다. 다만 KFA가 알 수 없는 이유로 멀쩡한 시스템을 버리고 스스로 10년, 20년 전으로 시계를 돌려놓았기에 비난과 비판이 끊이질 않는 것이다. 뼈저린 반성이 없고, 치열한 내부 개혁이 없다면 임기 2년 남은 지금의 체제는 실패의 기억으로 비쳐질 수 밖에 없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 yoshike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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