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벤투’ 후보군은 없었다! 클린스만 감독만 있었을 뿐[남장현의 풋볼 빅이슈]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2월 28일 11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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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스만 신임 국가대표팀 감독. AP 뉴시스
클린스만 신임 국가대표팀 감독. AP 뉴시스

독일 출신의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59)이 한국축구대표팀 신임 사령탑에 선임됐다.

대한축구협회(KFA)는 27일 “클린스만 감독이 A대표팀을 이끌게 됐다. 계약기간은 3월부터 2026년 북중미 월드컵 본선까지로 3년 5개월”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여기에 ‘클린스만 사단’에서 활동할 국내 코치들도 수면에 등장했다. 클린스만 감독과 2022카타르월드컵에서 국제축구연맹(FIFA) 기술연구그룹(TSG) 일원으로 활동했고 독일어에 익숙한 차두리 FC서울 유스강화실장이 하마평에 오르내리는 가운데 어학 능력을 갖춘 또 다른 지도자가 하마평에 오르내린다.

클린스만 감독은 최고의 현역을 보냈다. 1988서울올림픽에 참가했고 1988년, 1992년, 1996년 유럽선수권대회(유로)에 출전했다. 또 1990이탈리아월드컵부터 1998프랑스월드컵까지 월드컵 무대를 3차례 밟았다. 이 중 1996년 유로대회와 이탈리아월드컵 정상을 이끌었고, 1994미국월드컵에선 한국과 조별리그 최종전(3차전)에서 2골을 넣었다.

반면 지도자로서는 물음표가 많다. 2004년부터 2006년까지 독일대표팀을 지휘하며 자국에서 개최된 2006년 월드컵 3위를 차지하고, 2011년부터 2016년까지 미국대표팀을 이끌며 2014브라질월드컵 16강 진출을 이끌었으나 대개의 족적은 아쉬움이 크다.

미국으로 향하기 앞서 당대 유럽 최강으로 군림해온 바이에른뮌헨(독일)의 ‘보기 드문’ 암흑기를 함께 했고, 지도자로서 마지막이던 2019년 헤르타 베를린(독일)에선 불과 2개월 만에 물러나는 등 성공적 커리어는 아니었다. 심지어 독일과 미국대표팀에서의 성과도 요아힘 뢰브 전 독일 감독(당시 독일 수석코치)의 힘이 절대적이라고 보는 시선이 지배적이다.

그래서인지 클린스만 감독의 선임 발표가 나온 직후 여론은 극명히 엇갈렸다. 아니, 부정적인 시선이 더 많다. 각종 축구 게시판에는 클린스만의 선임에 의문을 갖는 팬들의 성토가 계속되고 있고, KFA 소셜미디어서비스(SNS)에는 독일 팬들이 직접 댓글을 통해 유감의 뜻을 전했다. 상당수 해외 언론들도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차치하고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매끄럽지 않은 선임 과정이다. 2018년 여름부터 지난해 카타르월드컵 본선까지 동행했던 파울루 벤투 감독(포르투갈)과 ‘아름답게’ 결별한 한국축구의 2023년 최대 과제는 ‘포스트 벤투’ 선임이었다.

KFA는 1월부터 독일 출신의 마이클 뮐러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장을 앞세워 감독 선임 작업에 돌입했다. 하지만 전원 한국인으로 구성된 전력강화위원들까지 배제한 채 후보 선정부터 접촉까지 뮐러 위원장이 독점해 불필요한 논란을 야기했다.

소통은 전혀 없었다. 지난달 25일 화상을 통한 1차 회의가 사실상 전부였고, 그마저도 요식행위에 불과했다. 오직 일방통행이었다. 뮐러 위원장은 ‘보안’을 이유로 위원들에게 후보가 누구인지 알려주지 않았을 뿐 아니라 가장 기본인 후보 선정 기준조차 확인해주지 않았다.

오히려 가장 열심히 움직인 건 몇몇 KFA 수뇌부였다. 무엇보다 클린스만 감독에 대해 유독 호의적이었던 고위 축구계 인사의 입김이 강하게 반영됐다는 후문이다. 이 유력인사는 2014년을 기점으로 클린스만 감독에 ‘꽂혀’ 있었던 인물인데, 왜 그런지는 어느 누구도 알지 못한다.

호세 보르달라스 전 발렌시아 감독, 치치 전 브라질대표팀 감독, 바히드 할릴호지치 전 모로코 감독, 로베르트 모레노 전 그라나다 감독, 라파엘 베니테스 전 에버턴 감독(왼쪽부터).
호세 보르달라스 전 발렌시아 감독, 치치 전 브라질대표팀 감독, 바히드 할릴호지치 전 모로코 감독, 로베르트 모레노 전 그라나다 감독, 라파엘 베니테스 전 에버턴 감독(왼쪽부터).

어찌됐든 이 과정에서 클린스만 감독 이외에 호세 보르달라스 전 발렌시아 감독(스페인), 치치 전 브라질대표팀 감독(브라질), 바히드 할릴호지치 전 모로코 감독(보스니아), 라파엘 베니테즈 전 에버턴 감독(스페인), 로베르토 모레노 전 말라가 감독(스페인) 등 일부 지도자들이 외신을 통해 등장했고, 마르셀로 비엘사 전 리즈 유나이티드 감독(아르헨티나)까지 거론됐는데, 이들도 전력강화위원들처럼 ‘들러리’에 가까웠다.

KFA 내부 소식을 잘 아는 축구인들에 따르면 접촉다운 접촉, 제대로 된 협상이 이뤄진 후보는 클린스만 감독이 유일했다고 알려진다. 결국 그간의 과정은 일련의 쇼에 가까웠고 소위 말하는 ‘답정너(답은 정해놓고 상대 의사를 묻는 것)’였던 셈이다.

심지어 KFA의 이해할 수 없는 행태는 선임 당일에도 있었다. 전력강화위원들은 보도자료를 통한 발표가 나오기 직전, 뮐러 위원장과 황보관 KFA 대회기술본부장으로부터 “클린스만 감독과 함께 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마지막 순간까지 꿔다놓은 보릿자루 취급을 받은 전력강화위원들은 분노했으나 상황을 되돌릴 힘은 없었다.

물론 클린스만 감독이 좋은 운(?)을 타고 난 사람이라 벤투 감독 이상으로 좋은 성과를 낼 순 있다. 그러나 KFA가 응당 거쳐야만 하는 일련의 프로세스를 생략하고 질서를 무시한 행위만큼은 질타를 받아 마땅하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한국축구에는 좋은 시스템이 있었다. 홍명보 전 KFA 전무(현 울산 현대 감독)의 적극적인 지원 속에서 김판곤 전 위원장(현 말레이시아 감독)이 전력강화위원들과 투명한 과정과 검증을 거쳐 벤투 감독을 선임해 카타르월드컵의 영광을 일굴 수 있었다. 본격 출항 전부터 축복받지 못한 채 엉키고 꼬여버린 ‘클린스만호’의 앞날은 험난할 수밖에 없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 yoshike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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