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빛대화 나눈 ‘보치아 모녀 파트너’, 패럴림픽 9연패 공 굴렸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9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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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도쿄 패럴림픽 폐막

4일 2020 도쿄 패럴림픽(장애인올림픽) 보치아 BC3 페어 결승전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한국 대표팀 최예진, 정호원, 
김한수(앞줄 왼쪽부터)가 경기 파트너로 경기를 함께 치른 최예진의 어머니 문우영 씨, 정호원의 코치 이문영 씨, 김한수의 어머니 
윤추자 씨(뒷줄 왼쪽부터)와 함께 시상대에 올라 기뻐하고 있다. 도쿄=패럴림픽사진공동취재단
4일 2020 도쿄 패럴림픽(장애인올림픽) 보치아 BC3 페어 결승전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한국 대표팀 최예진, 정호원, 김한수(앞줄 왼쪽부터)가 경기 파트너로 경기를 함께 치른 최예진의 어머니 문우영 씨, 정호원의 코치 이문영 씨, 김한수의 어머니 윤추자 씨(뒷줄 왼쪽부터)와 함께 시상대에 올라 기뻐하고 있다. 도쿄=패럴림픽사진공동취재단
한국 보치아 간판 최예진(30·충남도)이 경기장을 등지고 앉은 어머니 문우영 씨(59)와 눈빛을 주고받았다. 긴박한 연장전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보치아 규칙상 선수와 ‘경기 파트너’는 플레이 도중 대화를 나눌 수 없지만 두 사람은 눈빛만으로도 서로의 마음을 알았다.

어머니가 경사로(홈통) 조정을 마치자 딸이 오른손 손등으로 빨간 공을 밀었다. 한국 대표팀의 다섯 번째 투구였던 이 공은 앞에 있던 한국 공을 밀어 표적구 쪽에 딱 붙였다. 한국이 연장전에서 우위를 점하며 1988 서울 패럴림픽 이후 9개 대회 연속 보치아 금메달을 결정짓는 순간이었다.

최예진과 정호원(35·강원도장애인체육회), 김한수(29·경기도)가 나선 한국 보치아 대표팀은 4일 일본 도쿄 아리아케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2020 도쿄 패럴림픽 페어 BC3 결승전에서 연장 접전 끝에 일본을 5-4로 물리쳤다. 2인조 경기 대표 선수가 3명인 건 각 엔드(이닝)별로 선수 교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BC3등급에는 사지 운동 능력 제약으로 직접 공을 던질 수 없는 선수가 참가한다. 이들은 경기 파트너의 도움을 받아 홈통과 보조기구를 사용해 공을 굴린다. 김한수도 어머니 윤추자 씨(61)가 경기 파트너로 이번 대회에 함께 참가했고, 정호원은 이문영 코치의 도움을 받았다. 경기 파트너도 선수처럼 시상대에 올라 메달을 받고 한국에 오면 포상금도 받는다.

승리에 쐐기를 박은 최예진은 특수학교인 한국우진학교 고교과정 1학년 때 보치아에 입문한 뒤 입문 2년 만인 2008년 학생체전에서 그해 베이징 패럴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간판선수를 꺾으며 주목받았다. 이번 대회 개회식 한국 선수단 기수를 맡기도 했던 모녀는 앞서 2012 런던 패럴림픽 개인전 금메달, 2016 리우데자네이루 대회 페어(2인조) 은메달을 합작하기도 했다.

김한수는 유치원에 들어갈 무렵 뇌성마비 1급 진단을 받은 뒤 특수학교 5학년 때 보치아를 접했다. 대회마다 조기 탈락하며 ‘때려치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 무렵인 2006년 전국대회 우승으로 두각을 나타냈고 3년 뒤 태극마크를 달았다.

정호원은 생후 100일이 지났을 때 평상에서 떨어져 낙상 충격으로 뇌성마비 진단을 받았다. 어릴 때 집에 불이 나 어머니와 네 살 위 형까지 화상을 입고 장애인이 됐다. 하지만 혼자 매점을 꾸리며 두 장애인 아들을 키운 어머니는 항상 “세상에 힘들지 않은 사람 없다. 너희 힘으로 이겨내야 한다”며 아들에게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2012년 런던 대회 때부터 페어 대표로 활동한 세 선수가 이번 대회까지 개인전과 페어에서 따낸 패럴림픽 메달은 총 10개. 정호원이 5개(금 3개, 은 1개, 동 1개)로 가장 많고 최예진이 3개(금 2개, 은 1개), 김한수가 2개(금 1개, 은 1개)다.

한국 여자 양궁이 올림픽에서 9회 연속 단체전 금메달을 따내며 신궁의 실력을 자랑하는 것처럼 성별 구분 없이 참가하는 보치아에서는 한국이 세계 최강이다. 1984년 뉴욕-스토크맨더빌 대회 때부터 패럴림픽 정식 종목이 된 보치아에서 금메달을 가장 많이(10개) 따낸 나라가 1988년부터 이 종목에 참가하기 시작한 한국이다. 가족과 지도자 등 주위의 헌신이 없었다면 이루기 힘든 성과다.

정호원의 경기 파트너를 맡은 이 코치는 “호원이가 원래 힘든 걸 내색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그런데 어제는 자면서 이불 속에서 앓는 소리를 내더라”며 “그만큼 심적 부담이 컸을 텐데 맏이로서 동생들과 힘을 모아 결국 금메달을 따냈다”며 자랑스러워했다. 한국 선수들은 상대팀의 집중 견제 속에 개인전에서 줄줄이 조기 탈락했다. 연속 금메달 행진이 멈출 위기였지만 극적인 반전을 이뤘다.

도쿄 패럴림픽은 5일 폐회식을 마지막으로 13일간의 일정을 마무리했다. 다음 대회는 3년 뒤인 2024년 8월 파리에서 열린다.





도쿄=황규인 기자 kini@donga.com·패럴림픽공동취재단
#눈빛대화#보치아 모녀 파트너#패럴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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