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 김홍빈 대장 수색, 악천후에 난항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7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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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완등 뒤 하산중 조난
10시간 버티며 “등강기 필요” SOS…러 등반대 구조중 다시 추락
평소 장애인 위한 활동 펼쳐와… 무사귀환 바라는 메시지 줄이어

‘열 손가락 없는 산악인’ 김홍빈 씨가 장애인 세계 최초 8000m급 14개 봉우리 완등 마지막 목표였던 브로드피크 등정을 앞두고
 베이스캠프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정상에 올라 “코로나19로 지친 국민들을 응원한다”는 메시지를 전했던 김 씨는 하산 도중 
실종됐다. 광주시산악연맹 제공
‘열 손가락 없는 산악인’ 김홍빈 씨가 장애인 세계 최초 8000m급 14개 봉우리 완등 마지막 목표였던 브로드피크 등정을 앞두고 베이스캠프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정상에 올라 “코로나19로 지친 국민들을 응원한다”는 메시지를 전했던 김 씨는 하산 도중 실종됐다. 광주시산악연맹 제공
‘두 손이 있을 땐 나만을 위했습니다. 두 손이 없고 나서야 다른 사람이 보였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만큼 도움을 주고 싶었습니다. 보이지 않은 새로운 손이 그렇게 말합니다.’

‘열 손가락이 없는 산악인’ 김홍빈 씨(57)가 운영하는 인터넷 카페에서 볼 수 있는 ‘손’이란 제목의 시다. 김 씨는 2008년 남극에 갔을 때 긁적여 보았던 시라고 소개했다.

그는 장애인 최초로 히말라야 8000m급 14좌 완등에 나서면서 장애인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활동을 꾸준히 펼쳐왔다. 2018년 뜻있는 사람들과 함께 ‘김홍빈과 희망 만들기’라는 단체를 만든 것도 이 때문이다. 김 씨는 평소 지인들에게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나눔 캠프를 운영하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다. 어려운 청소년과 장애인을 위해 매년 트레킹 등 행사를 열어 꿈과 희망을 선물했다.

김효성 ‘김홍빈과 희망 만들기’ 사무처장은 “김 대장은 산행을 하지 않으면 항상 사무실에 나와 어려운 청소년과 장애인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다녔다”고 말했다. 그런 그가 실종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그의 무사 귀환을 기원하는 메시지가 줄을 이었다.


대한산악연맹에 따르면 그는 브로드피크(해발 8047m) 등정 후 19일 해발 7800m 지점에서 빙벽 아래로 떨어졌다. 바위틈에서 홀로 10시간 이상을 버티며 구조신호를 보낸 뒤 극적으로 러시아 등반대에 발견됐으나 구조 도중 다시 추락해 절벽 아래로 실종됐다.

김 대장은 중국 쪽 1000∼1500m 아래 협곡으로 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산악인 엄홍길 씨는 “사고가 난 그 지점에서 정상 사이에 둔덕이 많아 오르내리는 데 엄청난 체력이 소모된다. 집중력이 완전히 흐트러져 사고가 많이 난다”고 말했다. 김 대장은 사고 직후 광주시산악연맹 후배 조모 씨에게 위성전화로 조난 사실을 알렸다. 김 대장은 “등강기 2개가 필요하다. 무전기가 필요하다. 많이 춥다”고 했다.

조난 후 약 11시간 만인 19일 오전 11시 러시아 원정대가 그를 발견해 구조작업을 벌였다. 러시아 대원은 고정 로프를 설치하고 내려가 물을 주고 15m 정도 끌어올리는 구조활동을 했다. 김 대장은 이후 등강기를 이용해 혼자 올라가겠다고 했고 도중에 추락했다. 줄이 끊어진 것인지 아니면 등강기가 고장 난 것인지 확인되지 않았다. 파키스탄 육군 헬기, 원정대 한국대원 등이 수색작업을 벌이고 있지만 악화된 기상여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1991년 북미 최고봉 매킨리 등정 도중 동상에 걸려 열 손가락을 모두 잃었던 그는 손목도 성치 않아 엉덩이 살을 갖다 붙였다. 하체 근력을 키우기 위해 여름에는 사이클과 배드민턴을, 겨울에는 스키를 탔다. 장애인 스키 국가대표로 패럴림픽에도 참가했다.

장애인 세계 최초로 8000m급 14개 봉우리 완등을 이루어낸 이번 등정 목표는 코로나19로 힘든 국민들에게 용기를 주고 장애인도 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동료들은 “1%의 가능성을 100%의 가능성으로 만들자”던 그의 평소 말대로 그가 무사귀환하기를 바라고 있다.


이원홍 전문기자 bluesky@donga.com
정승호 기자 shjund@donga.com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김홍빈 대장#히말라야#하산중 조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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