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파리 올림픽에서 금빛 비상 꿈꾸는 비보이 ‘윙’[정윤철의 스포츠人]

부천=정윤철 기자 입력 2021-05-22 10:00수정 2021-05-22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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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서 온몸을 던져 한바탕 춤을 췄다. 바닥에 머리를 대고 빙글빙글 도는 그를 바라보는 어른들의 시선이 곱지 않다. 이따금 무슨 동작인지를 궁금해 하는 어른에게 “헤드스핀이라는 동작입니다”라고 설명하면 “헤드 뱅뱅 아니고? 길바닥에서 왜 이러고 있어”라며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돌아왔다.

자신을 향한 따가운 눈초리가 느껴질 때마다 소년은 다짐했다. ‘어차피 나는 남들과는 다른 길을 걷고 있어. 나를 향한 낯선 시선도 즐기자.’ 자신을 불량아 혹은 별종으로 보는 주위의 편견에도 소년은 브레이킹(breaking)으로 세계 정상에 서겠다는 꿈을 가슴에 품고 계속 춤을 췄다. 1970년대 미국에서 시작된 브레이킹은 힙합 음악의 강렬한 비트에 맞춰 추는 춤이다.

22년 동안 브레이킹에 푹 빠져 살고 있는 소년은 자신의 바람대로 세계적 비보이(B-boy·브레이킹을 추는 댄서)가 됐다. 세계 5대 브레이킹 메이저 대회(단체전 포함)에서 모두 우승을 차지하며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김헌우(34·별명 ‘윙’) 얘기다. 비보이 세계 랭킹 사이트인 ‘비보이 랭킹즈’에 따르면 김헌우는 이달 기준으로 개인 랭킹 2위다. 그가 속한 팀인 ‘진조 크루’는 팀 랭킹 3위.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지난해 12월 청소년을 중심으로 두꺼운 마니아층을 보유하고 있는 브레이킹을 2024년 파리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했다. 비보이 국가별 랭킹에서 한국은 종주국 미국에 이어 2위다. 비보이 개인 랭킹 톱 20에는 김헌우를 비롯해 한국 비보이 4명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올림픽 브레이킹 종목 우승자 배출이 유력한 국가로 한국이 꼽히는 이유다. 올림픽 무대에 서게 될 날을 꿈꾸는 김헌우를 경기 부천의 ‘진조 댄스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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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세 때 브레이킹을 시작한 ‘윙’ 김헌우는 한국을 대표하는 비보이다. 화려한 기술과 탁월한 리듬감으로 세계 5대 브레이킹 메이저 대회에서 모두 정상에 올랐다. 진조 크루 제공


● 비보이 ‘윙’이 날개를 달기 까지
김헌우는 12세 때인 1999년, 친형 김헌준(36·세계 11위)을 따라 브레이킹을 시작했다. 당시 10대 사이에서 인기가 많던 만화책 ‘힙합’의 영향도 있었다. ‘힙합’은 열아홉 살 ‘불량’ 청소년인 주인공이 친구들과 함께 브레이킹을 배우며 비보이의 꿈을 키워 나간다는 내용이다. 김헌우는 “만화책에 나오는 화려한 춤 동작이 신기해 브레이킹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러다가 만화 속 동작들을 실제로 해내는 비보이의 영상을 보고 나도 그렇게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비보이는 랩과 디제이, 그래피티(낙서 형식의 거리 예술)와 함께 힙합의 4대 요소로 꼽힌다. 비보이가 구사하는 브레이킹의 주요 기술은 토마스(손을 바닥에 짚고 공중에서 다리를 엇갈리며 돌기) 윈드밀(누워서 다리 벌리고 돌기) 헤드스핀 등 회전동작이 기본인 ‘파워 무브’와 업록(기술을 위해 리듬을 타는 준비 동작) 프리즈(고난도 동작에서 멈추기) 등 리듬감과 센스가 필요한 ‘스타일 무브’로 나뉜다.

학창 시절 김헌우는 브레이킹을 연습할 장소를 찾지 못해 동네 곳곳을 돌아다녔다. 그는 “처음에는 공원의 돌바닥에서 연습했는데 몸을 굴리는 동작을 하기에는 적절한 곳이 아니었다”면서 “친구들과 함께 찾아낸 곳이 대리석 바닥으로 된 지하철 역사였다”고 말했다.

사람들 발길이 잘 닿지 않는 지하철 역사의 구석과 청소년수련관에서 기술을 익히던 그는 2001년 형과 함께 브레이킹 팀인 진조 크루를 만들었다. 몇 년 뒤에는 아버지의 지인이 운영하던 댄스스포츠 연습실을 빌려 쓰면서 마침내 ‘길거리 연습’을 벗어났다.

나무 바닥으로 된 연습실은 낮에는 룸바와 차차차, 삼바를 가르치는 공간이었다. 이 때문에 그와 크루 멤버들은 2010년 자신들만의 연습실을 구하기 전까지 5년여 동안 ‘밤샘 연습’만을 했다. 자정에 연습실에서 모이면 오전 8시가 돼서야 연습실을 빠져 나왔다. 김헌우는 “세상과 단절된 채, 밤을 새워 연습한 뒤 아침 햇살을 맞으며 연습실을 나서면 내가 한층 더 성장했다는 기분이 들어 뿌듯했다”고 말했다.

국내 지역별 소규모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조금씩 성장하던 김헌우는 2004년 중국에서 열린 브레이킹 국제 대회에서 첫 우승을 차지하며 세계 비보이계에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윙’(wing·날개)이라는 별명을 정한 건 이 대회를 마친 뒤였다. 김헌우는 “우승을 하고 내 이름을 말해줘도 외국인들은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면서 “이름 말고 나를 기억할 수 있는 별명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윙에는 두 가지 뜻이 담겨 있다. “보잘것없던 내가 여러 사람의 주목을 받을 수 있도록 날개를 달아준 브레이킹에 대한 고마움과 앞으로 브레이킹을 통해 더 높이 날아오르고 싶다는 뜻을 담았어요.”

이후 본격적인 해외 활동을 시작했다. 2008년 세계 최고의 브레이킹 개인전(1 대 1 배틀)인 ‘레드불 비씨원’에서 정상에 오르는 등 국내외에서 100번 넘게 우승했다. 한때 세계 랭킹 1위에 오른 그의 브레이킹 영상은 비보이를 꿈꾸는 전 세계 꿈나무들의 교본으로 쓰인다. 김헌우와 진조 크루는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발생하기 전에는 1년에 8, 9개 대회를 직접 유치하는 등 브레이킹 대중화를 위해서도 노력했다. 그는 “브레이킹이 누구나 보고 즐길 수 있는 재미있는 문화라는 것을 알리고 싶다”고 했다.

2008년 세계 최고의 브레이킹 개인전(1 대 1 배틀) 대회인 ‘레드불 비씨원’에서 정상에 오른 김헌우. 진조 크루 제공


● 파리에서의 금빛 브레이킹을 위해
김헌우는 브레이킹이 올림픽 정식 종목이 된 순간을 잊지 못한다. 그는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올림픽을 통해 브레이킹에 대한 관심을 다시 불러일으킬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기 때문이다. 2000년대 들어 만화 힙합과 여러 방송 프로그램의 영향으로 국내 젊은층 사이에 브레이킹이 인기를 끌기도 했다. 국내에 여러 비보이 크루들이 탄생한 것도 이 때다. 하지만 대중이 점차 케이팝과 랩 경연 프로그램에 집중하면서 브레이킹에 대한 관심은 시들해졌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브레이킹이 젊은층을 중심으로 여전히 높은 인기를 자랑한다. 올림픽 개최를 앞둔 프랑스에는 ‘국립 비보이단’이 있을 정도다. 브레이킹이 시범 종목으로 채택됐던 2018년 부에노스아이레스 청소년 올림픽에서는 관중이 3만 명이나 몰렸다. 이를 본 IOC는 올림픽에 대한 젊은 세대의 관심을 높이기 위해 브레이킹을 정식 종목으로 채택했다.

올림픽 브레이킹 종목에는 남녀 부문별로 16명이 본선에 출전해 토너먼트 형식으로 메달을 다툰다. 피겨스케이팅처럼 심사위원들이 점수를 매기는데 구체적인 채점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선수들이 일정 시간 춤을 추면 기술과 연기력, 창의력 등을 평가해 승자를 가릴 것으로 보인다. 세계댄스스포츠연맹(WDSF) 가맹단체인 대한민국댄스스포츠연맹(KFD)은 브레이킹 분과위원들과 함께 국가대표 선발 방식 등을 논의 중이다.

파워 무브 같은 고난도 동작 못지않게 음악에 대한 이해도와 연기력이 브레이킹에서는 중요하다. 브레이킹은 비보이가 자신이 연기할 음악을 고르지 않는다. 현장에서 디제이가 틀어주는 음악에 맞춰 즉흥적으로 화려한 기술과 춤을 선보여야 한다. 김헌우는 “어떤 노래가 나와도 빠르게 흐름을 파악한 뒤 적합한 기술을 구사해야 하기 때문에 연습 때도 여러 노래를 듣고 있다”고 말했다.

파리 올림픽이 열리는 해에 김헌우는 37세가 된다. 그는 “30대 후반의 나이로 올림픽 출전을 노려야 해 부담스럽지만 3년 뒤에도 좋은 기량을 유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만약 선수로 출전하지 못한다면 지도자로 올림픽 무대를 밟아보고 싶다”고 말했다.

브레이킹은 2024년 파리 올림픽의 정식 종목이다. 김헌우는 “올림픽이 열릴 때까지 좋은 모습을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진조 크루 제공

브레이킹은 내년 항저우 아시아경기에서도 정식 종목이다. 그는 “우선 아시아경기에 출전해 좋은 모습을 보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면서 “올림픽 전에 열리는 국제 대회인 만큼 내 컨디션과 경쟁력을 점검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김헌우에게 올림픽 금메달을 딸 자신이 있는지 물었다. “어느 대회를 나가든지 말로 ‘메달을 딸 자신이 있다’고 한 적은 없다”고 했다. 말보다는 행동으로, 그리고 결과로 보여주고 싶다는 그는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준비를 하고 대회에 나가면 머릿속에 그려왔던 대로 좋은 결과가 따라왔다. 올림픽도 그런 방식으로 준비를 하겠다”고 말했다.

부천=정윤철 기자 trigger@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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