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FA, 돈도 돈이지만 ‘마음 씀’에 움직였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2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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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맞는 팀 간다” 새 풍속도
유니폼 들고 나온 SK 택한 최주환
다른 구단서 거액 내민 오재일은 아내 휴대전화까지 선물한 삼성행
두산은 7년 보장으로 허경민 잡고 정수빈도 ‘6년 56억’ 러브콜 통해


“구단이 보여준 진정성에 끌렸다.”

과거에는 프로야구 자유계약선수(FA)들이 어느 구단과 계약하면서 진정성이나 성의를 언급하면 이는 곧 ‘돈’이라는 곱지 않은 시선이 많았다. FA라는 일생일대의 기회를 금전으로 보상받고 싶은 선수들을 부정적으로 볼 수만은 없는 일. 하지만 올해 스토브리그를 보면 마냥 돈만 좇는 모습은 아니다. 더 많은 돈을 주겠다는 팀이 있어도 선수들이 여러 상황을 다각적으로 고려해 자신과 가장 맞는 팀을 찾고 있다는 게 예년과 달라진 분위기라는 관측이 나온다.

두산을 떠나 SK와 4년 42억 원에 계약한 최주환(32)은 지방의 다른 구단을 택했다면 더 많은 돈을 받을 수 있었다. 그 구단이 45억 원 이상을 제시했고, 또 다른 팀들도 가세했다면 총액의 앞자리도 바꿀 수 있었다는 얘기가 돌았다. 그러나 최주환은 사장, 단장, 감독 등이 총출동해 등번호(53)와 이름을 새긴 유니폼을 들고 온 SK에 마음을 열었다. 그는 “유니폼 사전 제작 같은 걸 아무한테나 하지는 않는다. 나를 진정으로 원하고 있고 내가 열심히 하는 만큼 대우받을 수 있겠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두산에서 FA로 풀린 오재일(34)의 마음을 녹인 건 자신뿐만 아니라 아내에게까지 최신 휴대전화를 선물한 삼성의 마음 씀씀이였다. 삼성은 4년 50억 원에 계약한 오재일에게 삼성전자의 갤럭시Z 폴드2 2개를 줬다. 출고가가 239만8000원인 고가의 상품이다. 삼성과 계약하기 전 애플사의 아이폰을 쓰고 있었던 오재일은 “내 돈을 들여서라도 휴대전화를 바꿀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좋은 선물을 받게 돼 너무 기쁘다”며 활짝 웃었다.

SK가 이름을 새긴 유니폼으로, 삼성이 휴대전화 등 ‘현물’로 진정성을 보였다면, 두산은 보이지 않는 감성으로 주축 선수들을 잔류시키는 데 성공했다. 1990년생인 허경민(7년 85억 원)과 정수빈(6년 56억 원)은 세는나이로 각각 38세, 37세까지 현역을 보장받은 게 재계약의 큰 이유가 됐다.

FA는 처음 자격을 얻은 이후 다시 자격을 얻기까지 4년이 걸린다. 따라서 선수들의 계약기간도 4년이 관행처럼 굳어졌다. 30대 전후에 첫 FA가 된 선수들이 두 번째 FA가 되는 나이가 대체로 30대 중반이라 선수들이 첫 FA 때만큼 좋은 조건으로 계약하기는 쉽지 않다. 이런 점을 고려해 두산은 프랜차이즈 스타인 둘에게 ‘노후 보장’이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한 셈이다. 정수빈 쟁탈전에 가세한 한화가 정수빈에게 ‘연평균 10억 원’(4년 40억 원)이라는 당근으로 유혹했지만 고배를 마신 이유기도 하다.

김배중 기자 wante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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