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우승은 흥국? 세상에 당연한 우승은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8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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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배구 흥국생명 박미희 감독
요즘 가장 자주 듣는 단어 ‘부담’… 통합우승 팀은 쉽게 나오지 않아
기대 어긋나지 않게 내실 다지는중
연경이 내 말을 너무 잘 들어… 롱런 비결? 모두 선수들 덕분이죠

박미희 감독이 경기 용인시 흥국생명체육관에서 선수들이 자신의 목표 3가지를 적어놓은 보드판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다. 
11년 만에 국내에 복귀한 김연경의 3번째 목표를 보며 박 감독은 “감독님 말씀 잘 듣기는 이미 잘 지키고 있다. 그것보다 내가 
바라는 건 첫 번째 목표인 통합우승”이라면서 웃음을 터뜨렸다. 용인=양회성 기자
박미희 감독이 경기 용인시 흥국생명체육관에서 선수들이 자신의 목표 3가지를 적어놓은 보드판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다. 11년 만에 국내에 복귀한 김연경의 3번째 목표를 보며 박 감독은 “감독님 말씀 잘 듣기는 이미 잘 지키고 있다. 그것보다 내가 바라는 건 첫 번째 목표인 통합우승”이라면서 웃음을 터뜨렸다. 용인=양회성 기자
박미희 흥국생명 감독(57)이 요즘 가장 자주 듣는 단어는 ‘부담’이다. ‘배구 여제’ 김연경(32), 국가대표 세터 이다영(24)의 합류로 흥국생명의 독주가 예상되는 가운데 ‘이겨도 본전’인 박 감독을 향해 부러움과 동시에 걱정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는 것. 팬들 사이에선 벌써 ‘어우흥(어차피 우승은 흥국생명)’이라는 표현도 나온다.

그러나 정작 박 감독은 담담했다. 14일 경기 용인시 흥국생명체육관에서 만난 그에게 ‘어우흥’에 대한 생각을 묻자 “세상에 당연한 우승은 없다. 이럴 때일수록 들뜨지 않고 내실을 다지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우승 팀은 매년 나오지만 통합우승 팀은 쉽게 나오지 않는다.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하겠다”며 목표를 명확히 했다. 통합우승을 향한 갈망이 느껴졌다.

○ ‘배구 여제’ 김연경에 건넨 첫마디

새 시즌 흥국생명이 주목받는 건 무엇보다 11년 만에 국내에 돌아온 레프트 김연경 때문이다. 그의 복귀 후 처음 실시한 지난달 말 공개 훈련에는 취재진 100여 명이 몰리기도 했다. 김연경은 체육관 벽면 보드판에 ‘통합우승 하기, 트리플 크라운(한 경기에서 후위공격, 블로킹, 서브 각 3점 이상) 달성, 감독님 말씀 잘 듣기’라는 올 시즌 자신의 목표 세 가지를 적어놓았다. 이에 대해 묻자 박 감독은 “내 말은 너무 잘 듣는다”며 웃고는 “연경이는 알아서 잘하는 선수다. 배구 테크닉을 떠나 세계적인 선수인 연경이의 자기 관리를, 다른 선수들이 보고 느끼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난달 중순 팀에 합류한 김연경에게 박 감독은 “이곳은 잘하는 선수들이 모인 대표팀과는 다르다. 때론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신인들에게 맞춰 움직여야 하는 곳”이라는 첫마디를 건넸다고 한다. 김연경은 30일 한국배구연맹(KOVO)컵대회 여자부 개막전인 현대건설과의 경기에서 국내 복귀전을 치를 예정이다. 아직 몸 상태가 100%는 아니지만 남은 기간 충분히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게 박 감독의 판단이다.

쌍둥이 언니 이재영(24·레프트)과 한솥밥을 먹게 된 이다영에 대한 기대도 드러냈다. 박 감독은 “다영이는 지금도 좋은 세터지만 성장할 여지가 더 많은 선수다. 둘 모두에게 기술적인 조언보다 새로운 목표를 제시함으로써 오래 잘하는 선수가 되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 벌써 7번째 시즌… 롱런의 비결은

2014∼2015시즌부터 흥국생명을 맡아온 박 감독은 이번 시즌을 앞두고 다시 재계약(2년)에 성공했다. 현재 V리그 남녀부 13개 구단 감독을 통틀어 최장수 사령탑이다. 2018∼2019시즌에는 국내 프로스포츠 사상 최초로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차지한 여성 지도자라는 이정표를 세우기도 했다. 롱런의 비결을 묻자 박 감독은 “다 선수들 덕분”이라며 웃고는 “감독을 그만두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던 것 같다. 조급하지 않게 팀을 이끌어 온 것이 좋은 평가를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초보 감독 때와 가장 달라진 점은 일희일비하지 않게 된 것이란다.

마지막으로 목표를 물었다. 박 감독은 “통합우승도 해봤고 꼴찌도 해봤다. 감독으로서 모든 걸 경험한 것 같다. 바람이 있다면 큰 자취를 남기는 것보다 후회나 아쉬움을 덜 남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곱 번째 시즌을 앞둔 박 감독은 그렇게 다시 한 번 새 시즌을 준비하고 있었다.

용인=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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