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석의 TNT타임]고속질주 KLPGA투어에 짙어진 위기감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4월 30일 1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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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사태로 KLPGA투어에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우승한 선수를 축하하고 있는 KLPGA 선수들 모습. KLPGA 제공
코로나19 사태로 KLPGA투어에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우승한 선수를 축하하고 있는 KLPGA 선수들 모습. KLPGA 제공


정상급 프로골퍼나 주말골퍼가 똑같이 가장 긴장하는 순간이 있다. 첫 홀 티샷을 할 때다. 그날 처음 날리는 샷이니만큼 첫 단추를 꿰듯 잘 풀어나가야 한다는 부담감이 커진다. 어떤 톱 골퍼들은 드라이빙 레인지에 가면 웨지가 아니라 드라이버 샷부터 연습을 시작하기도 한다. 1번 홀 티샷을 가정한 것이다.

체계적으로 위밍업을 하는 프로들과 달리 아마추어 골퍼들은 허겁지겁 티박스로 나와 몸도 제대로 풀지 않은 채 급하게 스윙을 하다 보니 미스샷이 나오기 일쑤다. 첫 홀 멀리건을 용인하는 경우도 많다.

지난해 12월 베트남에서 열린 2020시즌 KLPGA투어 개막전인 효성챔피언십. KLPGA  제공
지난해 12월 베트남에서 열린 2020시즌 KLPGA투어 개막전인 효성챔피언십. KLPGA 제공


뭔가를 새롭게 시작하는 건 늘 어렵고 힘들지 모른다. 2020시즌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도 그렇게 보인다. 지난해 12월 베트남에서 효성챔피언십으로 개막전을 치른 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3월 대만여자오픈이 취소된데 이어 국내에서는 아직 막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

국내 개막전은 사실상 KLPGA투어의 본격 레이스를 알리는 중요한 무대다. 하지만 4월 예정된 롯데렌터카여자오픈 등이 줄줄이 취소됐다. 5월 15일 개막하려던 NH투자증권 레이디스챔피언십과 5월 20일로 잡혔던 두산 매치플레이 챔피언십도 무산됐다.

도미노가 쓰러지듯 KLPGA투어가 연쇄적으로 취소되는 데는 코로나19 확산 우려 때문이다. 선수, 갤러리, 운영 요원 등의 건강은 무엇보다 우선돼야 한다. 그래도 국내 골프장은 코로나19 사태에도 무풍지대로 불린다. 골프가 야외 스포츠인데다 다른 운동과 달리 신체 접촉이 없고 각자 장비를 사용하는 만큼 코로나19 감염 우려가 적다는 판단에서다. 게다가 국내 코로나19 사태가 진정 국면에 접어든 만큼 무관중으로 KLPGA투어를 진행할만한 시기가 왔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프로야구는 5월 5일, 프로축구는 5월 8일 시즌을 시작하기로 했다.

그래도 KLPGA 대회 취소 발표는 줄을 잇고 있어도 열겠다는 발표는 찾기 힘들다. 코로나19에 대한 불안감이 여전한 데다 그 직격탄을 맞아 휘청거리는 기업 입장에서는 대회 개최가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지적이다. 특히 국내 개막전 타이틀 스폰서 찾기가 쉽지 않았다. 한 골프 매니지먼트 업체 대표는 “첫 대회는 아무래도 큰 주목을 받게 된다. 자칫 불상사라도 나온다면 큰 타격이 될 수 있어 머뭇거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사태로 불황의 그늘이 짙어진 것도 대회 취소로 직결되고 있다. 한 골프 마케팅 전문가는 “회사 경영이 힘들어져 적자 규모가 커지고 정부 지원에 구조조정, 무급휴직 등이 대대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골프 대회를 개최했다 역풍을 맞을 수 있다”고 말했다. 골프 대회 개최 목적으로는 프로암대회 등을 통한 네트워크 강화나 우수 고객에 대한 서비스 차원도 큰 데 최근 가라앉은 국내 여건과는 맞지 않다는 여론도 있다.

지난해 4월 KLPGA투어 국내 개막전인 롯데렌터카오픈에서 우승한 조아연. KLPGA 제공
지난해 4월 KLPGA투어 국내 개막전인 롯데렌터카오픈에서 우승한 조아연. KLPGA 제공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가 국내 개막전으로 5월 14일부터 양주 레이크우드CC에서 제42회 KLPGA챔피언십을 개최하기로 한 것도 이런 분위기를 감안한 고육지책으로 풀이된다. 누구도 선뜻 첫 대회라는 ‘총대’를 메지 않으려는 가운데 KLPGA가 결자해지에 나섰다는 얘기다.

일단 시동을 걸었어도 KLPGA투어가 정상 궤도에 오를지는 불투명하다. KLPGA챔피언십 다음 대회로 잡힌 E1 채리티 챔피언십(5월 29~31일·사우스스프링스)도 당초 취소하려고 했다. 하지만 KLPGA 측의 적극적인 요청에 따라 방침을 바꿔 대회 개최를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 골프 해설위원은 “E1은 회사 최고위층이 KLPGA투어 회장 출신이어서 어려운 여건에도 대회를 개최하는 쪽으로 선회한 것 같다”고 전했다.

6월 12일 개막 예정인 에쓰오일 챔피언십도 불투명해 보인다. 에쓰오일은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석유제품 소비 감소와 국제 유가 급락의 영향으로 올해 1분기(1~3월) 영업 손실이 1조73억 원으로 집계됐다.

대한골프협회가 주최하는 기아자동차 제34회 한국여자오픈골프선수권대회(6월 18~21일·베어즈베스트청라)는 5월 초 연휴 끝나고 대회 개최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코로나19 사태 추이와 함께 자동차 업계도 불황의 직격탄을 맞은 만큼 대회에도 영향을 끼칠 것 같다.

7월 10일 중국 웨이하이포인트에서 개막하는 아시아나항공오픈은 국내 개최를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에서 개최할 경우 해외 입국자의 자가격리 조치 등의 영향을 받을 수 있어 정상 개최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중국 선수들의 국내 입국도 난항이 예상돼 성사될 경우 KLPGA투어 선수 위주로 치를 전망이다. 다만 항공업계가 최악의 경영난을 겪고 있는데다 HDC현대산업개발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문제도 대회 개최의 주요한 변수로 떠올랐다. 대회가 열린다면 장소는 아시아나 또는 오크밸리가 유력하게 떠올랐다.

KLPGA투어 엠블럼
KLPGA투어 엠블럼


10년 넘게 고속질주한 KLPGA투어에 짙은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위기를 극복한다면 더욱 단단해진 무대 위에 성장세를 유지할 수 있다. 일단은 스타트와 초반 페이스가 중요해 보인다.

한편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는 시즌 재개 시점을 7월로 잡았다. 6월 예정됐던 메이저 대회 KPMG 여자 PGA 챔피언십은 10월로 연기됐다. 6월 19~21일 예정됐던 월마트 NW 아칸소 챔피언십을 시작으로 시즌을 재개할 계획이었던 LPGA투어는 재개 시점을 7월 15~18일 예정된 다우 그레이트 레이크스 베이 인비테이셔널로 더 늦췄다.

8월말 국가 대항전 UL 인터내셔널 크라운은 올해 개최하지 않는다. 한 차례 연기됐던 볼빅 파운더스컵, 롯데 챔피언십, 휴젤-에어프레미아 LA오픈, 메디힐 챔피언십 등도 올해는 열지 않는다.

김종석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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