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투 감독 "동아시안컵 우승은 선수들 덕분, 아시안컵 탈락은 내 책임"
황인범 "팀 내부에서는 '절대 흔들리지 말자'는 이야기 많이 주고 받아"
군더더기 없는 마무리였다. 다사다난했던 벤투호가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 정상 등극으로 2019년의 피날레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우승이라는 성과 아래 파울루 벤투 감독과 선수단의 관계는 더욱 끈끈해졌다.
벤투 감독이 이끄는 한국은 18일 오후 7시30분 부산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열린 일본과의 2019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 남자부 3차전에서 황인범(밴쿠버)의 결승골에 힘입어 1-0 승리를 거뒀다.
3전 전승을 기록한 한국은 2승1패의 일본을 밀어내고 대회 패권을 거머쥐었다. 2015년과 2017년에 이은 3회 연속 우승이다. 2003년과 2008년 대회를 포함해 5번째 정상 등극으로 역대 최다 우승팀 지휘도 사수했다.
경기 후 공식 기자회견에 나선 벤투 감독은 승리의 방법을 논하기 전 선수들에게 공을 돌리는 일부터 했다.
벤투 감독은 “선수들에게 우승을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말하고 싶다. 함께 고생한 스태프들도 축하한다. 우리팀을 지속적으로 지원해준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우승이 가능할 수 있도록 도와준 선수들과 스태프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한 해를 정리하는 마지막 A매치였던 만큼 자연스레 2019년 결산에 초점이 맞춰졌다. 벤투 감독이 지난 1월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8강 탈락의 쓰라린 기억을 소환한 것도 이때였다.
벤투 감독은 “(부임 후) 25경기를 치렀는데 패배는 아시안컵 8강전과 브라질전 두 번에 불과하다. 전체적인 결과는 나쁘지 않다”면서 “선수들이 이 대회를 우승시켰고, 나는 아시안컵 8강 패배의 책임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한 해의 가장 안 좋았던 순간의 책임을 스스로에게 전가하면서, 최대 업적을 선수들의 공으로 돌린 것이다. 앞으로도 자신이 쏟아지는 화살을 감수하겠으니 지금처럼 묵묵히 성과를 위해 달려가자는 선수단을 향한 메시지로도 읽힐 수 있는 대목이다. 이는 부진한 경기력에도 특정 선수를 탓하지 않는 벤투 감독의 평소 스타일과 일맥상통한다.
이번 대회를 치르기 전까지 벤투 감독은 적잖은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2022 카타르월드컵 2차예선에서 약팀들을 상대로 속 시원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것이 원인이었다. ‘매번 같은 선수만 사용한다’, ‘별다른 전술이 없다’는 목소리도 차츰 흘러나왔다.
이런 일부의 시선과 달리 벤투 감독을 향한 선수들의 신뢰는 꽤 높다. 이번 대회를 치르는 동안 마이크 앞에 선 몇몇 선수들의 인터뷰에서 분위기를 엿볼 수 있었다.
수비수 김민재(베이징 궈안)는 지난 15일 중국전이 끝난 뒤 벤투 감독 축구에 대해 “팬들과 언론은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지만 선수들은 전혀 그렇게 생각 안 한다”고 잘라 말했다. “철학이 확실하시다. 수비수들은 헷갈리게 말하면 사실 힘들다. 하지만 벤투 감독은 소집할 때마다 일관적이시다. 그런 부분이 좋다”는 것이다.
미드필더 황인범(밴쿠버)의 견해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황인범은 “팀 내부에서는 ‘절대 흔들리지 말자’는 이야기를 많이 주고 받는다. 경험 많은 형들이 어린 선수들의 중심을 잡아주면서 분명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2차예선에서의 부진으로 팬들의 거센 비난에 시달리던 황인범은 이번 대회 최고의 별로 떠오르며 차갑던 공기를 바꿨다. 뚝심있게 황인범의 재발탁한 벤투 감독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감독은 자신을 낮추면서 선수들을 띄웠다. 선수들은 주위의 곱지 않은 시선에도 자신만의 축구를 위해 제 갈길을 가는 감독을 전적으로 따른다. 이번 대회에서 확인된 장면이다. 지금 벌어지는 모든 일이 2022 카타르월드컵을 위한 과정이라고 보면 동아시안컵을 통해 한결 굳건해진 벤투 감독과 선수단의 신뢰는 어쩌면 트로피 이상의 값어치가 있을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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