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익래의 피에스타] 조연 자처하던 김재호의 반성과 변화, 낯선 격렬함에 대하여

  • 스포츠동아
  • 입력 2019년 10월 25일 05시 30분


두산 김재호. 스포츠동아DB
두산 김재호. 스포츠동아DB
‘김ㅋㅋ’. 김재호(34·두산 베어스)의 별명이다. 항상 웃는 얼굴로 그라운드에 나서는 그에게 두산 팬들이 붙인 긍정의 별명이다. 적시타를 때리거나 화려한 수비를 펼쳐도 무덤덤하게 미소를 짓는 게 전부였다. 취재원으로서의 김재호도 비슷한 이미지였다. 어떤 질문을 던져도 자신의 철학을 담담하게, 하지만 뚜렷하게 말한다. 우승을 했을 때도 격한 목소리나 흥분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런 그가 달라졌다. 변화는 22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키움 히어로즈와 한국시리즈(KS) 1차전부터 포착됐다. 두산이 0-1로 뒤진 2회 1사 만루, 김재호는 침착하게 밀어내기 볼넷을 얻었다. 그러자 그는 배트를 내려두고 주먹을 불끈 쥔 채 덕아웃을 응시했다. 선수들은 그런 그에게 격한 환호를 보냈다. 2-1로 앞선 4회 1사 3루에서 적시타를 때렸을 때도, 주자로 나가 상대 실책 때 홈을 밟았을 때도 김재호의 ‘리액션’은 격했다. 2004년 데뷔해 어느덧 프로 16년차인 그가 낯설었다. 김재호도 “이런 액션은 야구 인생에서 처음”이라고 밝혔다. 팬들이 “오재원과 김재호의 영혼이 바뀐 것 같다”는 우스갯소리를 던질 만큼 낯설다.

돌이켜보면 김재호는 매번 조연에 만족했다. 유격수로 국내 최정상급 수비 실력을 지녔고 타선에서도 해결사 능력을 갖췄지만 돋보이는 걸 꺼려했다. 적극적인 환호나 격렬한 동작을 자제하며 동료들에게 스포트라이트를 양보했다. “두산에는 내가 아니더라도 좋은 선수가 많다. 난 그들을 받혀주는 역할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는 것이 그의 회상이다.

7번째 KS. 그가 달라진 건 미안함 때문이었다. 두산은 2015~2016년 2연속시즌 KS 정상을 제패했지만 2017~2018년에는 준우승에 머물렀다. 올해까지 5연속시즌 KS 진출이라는 성과 자체만으로도 대단하지만, 김재호는 앞선 두 번의 실패를 자신의 탓으로 돌렸다. 2017년에는 어깨 부상 후유증 탓에 5경기 10타수 무안타에 그쳤고, 2018년에도 6경기에서 타율 0.167(24타수 4안타)로 침묵했다.

“2년간 동료 선수들과 팬들에게 미안했다. 나 때문에 졌다고 생각했다. 큰 경기에 약하다는 이미지를 깨고 싶었다. 후배들을 적극적으로 독려하지 못하던 모습부터 반성했다. 올해 KS부터는 그라운드 위에서는 활약으로, 밖에서는 에너지를 뿜어내는 것으로 기여하고 싶었다. 1차전을 앞두고 내심 ‘격하게 세리머니 할 기회가 제발 한 번만 와라’라고 되뇌었다. 운이 좋게 에너지를 표현할 기회가 왔다.”

두산은 1·2차전을 깔끔히 승리하며 88.9%의 우승 확률을 거머쥐었다. 김재호는 “정규시즌 후반기부터 우리 스스로 갖고 있던 ‘우리에 대한 불안감’을 지웠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대부분의 고참, 그리고 리더는 변화를 두려워한다. 지난해까지의 김재호도 사실 그랬다. 그런 그가 달라졌다. 김재호의 격렬함이 두산 팬들에게 낯설지만 반가운 이유다.

최익래 기자 ing1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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