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제자’ 이승엽의 전화 속에 담긴 ‘감독대행’ 박흥식의 고충

  • 스포츠동아
  • 입력 2019년 5월 29일 14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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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박흥식 감독대행. 사진제공|스포츠코리아
KIA 박흥식 감독대행. 사진제공|스포츠코리아
KIA 타이거즈 박흥식 감독대행(57)과 ‘국민타자’ 이승엽(43)은 KBO리그를 대표하는 ‘사제지간’이다. 삼성 라이온즈에서 코치와 선수로 인연을 맺은 뒤 세월이 흘러 서로 입고 있던 유니폼은 그때그때 달라져도 한결같이 신뢰와 애정을 주고받은 사이다. 이승엽이 일본으로 떠나기 직전인 2003년 단일시즌 최다홈런 아시아신기록인 56호 아치를 쏘아올린 경기에서 펄쩍펄쩍 뛰며 그 누구보다 기뻐했던 이가 바로 박 대행이다.

2017시즌을 끝으로 은퇴한 이승엽은 KBO홍보대사를 맡고 있지만 여전히 현장 밖에 머물고 있다. 가끔씩 해설위원으로 TV 화면에 등장해도 현장과 활발하게 교감하진 않는다. 자신의 등 뒤로 비추는 어마어마한 후광에 현장 주역들의 노고가 묻힐 수도 있다는 염려에서다. 그만큼 선수시절이나 은퇴한 지금이나 심사숙고하는 그의 성격은 여전하다.

박 대행은 김기태 전 감독이 16일 돌연 자진사퇴하면서 2군 감독에서 1군 사령탑으로 승격됐다. KIA 구단은 이례적으로 “올 시즌 끝까지 박흥식 감독대행 체제로 간다”고 발표했다. ‘감독대행’이라는 특수한 신분과 상황이 자칫 선수단 안팎에 그릇된 신호를 전하고 원치 않는 잡음을 불러올 수 있음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코치로만도 20년 넘게 생활해온 박 대행 또한 자신의 ‘신분적 한계’를 잘 인식하고 있다.

28일부터 대전에서 한화 이글스와 원정 3연전을 치르고 있는 박 대행은 이승엽에게서 걸려온 전화 한 통을 통해 자신의 현재 처지를 함축적으로 표현했다. 그가 감독대행으로 임명된 16일이었다. 핸드폰 너머로 반가운 목소리와 더불어 “축하한다는 말씀을 드리기는 곤란할 것 같다”는 말이 들려왔다. 대행 꼬리표를 떼기가 쉽지 않은데다, 그 과정 또한 험난할 것임이 불을 보듯 뻔해서다. 박 대행은 “(이)승엽이가 워낙 신중한 성격이니까”라며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박 대행은 자리에 연연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한 곳에 오래 머물지 않아온 그간의 지도자 경력이 이를 입증한다. 감독대행이라는 지금의 자리에 대한 입장도 마찬가지다. 감독대행 임명이 발표된 직후 그는 “김기태 감독에게만 책임이 있는 게 아니지 않나. 나를 포함한 모든 코치들과 선수들도 다같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100경기나 남은 시점이었던 만큼 앞장서서 팀 분위기를 추슬러 팬들에게 조금이나마 사죄할 수 있는 시즌을 만들겠다는 굳은 의지를 함께 드러냈다.

그로부터 2주 가량 시간이 흘렀다. KIA는 빠르게 예전의 근성과 활력을 찾아가고 있다. 평소 술을 즐기지 않지만, 그 또한 감독대행이 된 뒤로는 소통을 위해 술잔을 기울이는 날들이 부쩍 늘었다. 때로는 적지 않은 정신적 부담을 잠시나마 내려놓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박 대행은 “야구는 선수들이 한다. 즐겁지 않으면 야구도 안 된다”며 “선수들이 이런 내 생각을 믿지 못하면 아무것도 못한다. 선수들이 믿을 수 있게 (처신)하는 게 내 역할이다”고 말했다. 박 대행이 목청이 쉬도록 덕아웃에서 먼저 큰 소리를 내는 이유다.

대전 | 정재우 기자 ja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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