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마운드 ‘허리병’ 없어졌대요”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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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의지 보상선수로 이적 이형범
7경기 나서 구원으로만 3승 선두 ˝생애 첫 KS 등판 꿈꾸니 더 힘나˝

“승리 요정.”

4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만난 두산 이형범(사진)에게 붙은 별명을 부르자 수줍게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지난달 23일 개막 후 일주일은 그의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순간이다. 2013년 프로로 데뷔한 뒤 통산 ‘2승’에 불과했던 그가 5경기에서 승부처마다 마운드에 올라 위기를 넘긴 뒤 팀이 역전에 성공하며 벌써 3승(다승 1위)이나 챙겼다. 이런 이유로 그가 마운드에 오를 때마다 동료들도 “또 승리야?”라며 의욕을 불태운단다. 이형범은 “행복하고 영광스럽다. 언제든 감독님이 내보내주시면 빨리 위기를 넘겨 경기 흐름을 유리하게 바꾸고 싶다”고 말했다.

자유계약선수(FA)로 NC에 둥지를 튼 양의지의 보상선수로 두산에 오기 전까지 본인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동안 제구가 안정적이라고 평가받았던 그는 자신의 장기인 투심 패스트볼을 가다듬으며 타자들이 까다로워하는 ‘스트라이크존 낮은 구석’에 공을 꽂을 줄 아는 두산의 ‘핵심’ 불펜으로 거듭났다.

“앞에서는 상남자 같은 (박)세혁이 형이 공을 ‘바닥에 패대기쳐도 다 받아줄게’라며 용기를 주고 등 뒤의 수비수들은 안타라 생각한 타구도 다 아웃으로 만들어줘요. 믿음이 생기니 더 자신감도 붙고 공도 제가 원하는 데로 잘 들어가요. 동료들 덕이죠(웃음).”

‘생애 첫 한국시리즈’라는 문구도 그를 매일 흐트러지지 않게 해주는 자극제다. 야구 인생 10여 년 동안 가장 그의 심장을 뛰게 한 말도 2월 일본 미야자키 스프링캠프 당시 룸메이트였던 이현승이 해준 ‘한국시리즈 마운드에 오르는 네 모습을 상상해 봐’였단다.

“두산은 4년 연속(2015∼2018년) 한국시리즈에 오른 강팀이잖아요. 이 말이 허투루 안 들리더라고요. 제가 잘하면 꿈이 현실이 될 수 있는 거잖아요. 매일 밤 자기 전 행복한 상상을 하며 잘하자고 다짐해요.”

두산으로서도 올해 이형범의 활약이 매우 중요하다. 린드블럼, 후랭코프 외국인 원투펀치, 이용찬, 이영하, 유희관으로 이어지는 국내 선발진과 경기를 마무리 짓는 함덕주가 든든하지만 선발과 마무리를 잇는 불펜이 두산으로서는 상대적으로 불안하다. 지난해 한국시리즈에서도 SK에 결국 불펜 싸움에서 고배를 마신 경험이 있다. 이형범이 ‘든든한 허리’로 가세한다면 오히려 지난해보다 짜임새 있는 전력을 갖춰 갈 수 있다.

다행히 이형범도 이런 상황을 가슴 깊이 이해하고 있다.

“과분한 기회를 얻고 행운도 따르는 등 제게 꿈같은 일이 계속 벌어져요. 시즌 전만 해도 개인 목표가 없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위기를 빨리 잠재우는, 팀에 도움이 되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현승이 형 말처럼 저도 한국시리즈 가봐야죠.”

김배중 기자 wanted@donga.com
#양의지 보상선수#두산#이형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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