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발리볼] 디그여왕 김해란의 마지막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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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년 2월 27일 09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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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국생명 김해란. 스포츠동아DB
흥국생명 김해란. 스포츠동아DB
지난 13일 흥국생명은 GS칼텍스와의 V리그 5라운드 원정에서 3-0 완승을 거뒀다. 1세트 18-12로 6점차까지 뒤졌던 상황을 뒤집은 것이 승패의 분수령이었다. 24-22 매치포인트로 몰렸지만 이재영의 오픈으로 추격한 뒤 김해란의 천금같은 디그 덕분에 듀스로 끌고 가자 마무리 기회를 날려버린 GS칼텍스는 허물어졌다. 알리의 백어택을 뒤로 넘어지면서 손으로 걷어낸 순발력과 센스는 리베로 김해란이 어떤 클래스의 선수인지 상징하는 장면이었다.

그런 김해란이 고마웠던지 박미희 감독은 “5라운드 MVP를 받았으면 좋겠다”고 대놓고 응원했다. 5라운드 MVP는 결국 도로공사 문정원이 받았지만 김해란에게 줬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만큼 베테랑은 잘했다. 그는 “선수들 마음속의 MVP로도 충분하다”고 최근 인터뷰에서 조용조용하게 말했다.

23일 GS와의 6라운드 재대결에서도 김해란은 여전히 빛났다. 흥국생명은 세트마다 리드당한 경기를 뒤집었다. 특히 3세트는 18-10, 8점차로 끌려갔지만 대역전해서 경기를 마무리했다. 그만큼 지금 흥국생명은 뒷심이 좋아졌다. 두 경기에서 김해란이 10개의 마술같은 디그를 해줬기에 가능했다.

● 세월을 거슬러가는 김해란의 비결은

올해 35살의 베테랑 김해란은 세월에 역행하듯 여전히 빠르게 몸을 움직인다. “부상 없이 운동하도록 튼튼한 몸을 주신 부모님께 감사한다”는 자신의 말처럼 타고난 몸 덕도 보지만 노력도 많이 하는 선수다. 코트에서의 멋진 디그를 보여주기 위해서 훈련장에서 얼마나 많은 땀을 흘리고 훈련코트에서 아픔을 참아가면서 여기저기로 다이빙하는지 팬들은 잘 모른다.

이런 김해란을 곁에서 지켜본 박미희 감독은 “김세영과 함께 우리 팀에서 가장 훈련이 많다.

훈련을 쉬었으면 쉬었지 일단 훈련을 하면 허투루 하지 않는다. 일찍 훈련이 끝나면 코치에게 수비보강을 위해 따로 공을 때려달라고 한다. 훈련 때도 실전처럼 100% 전력을 다하는 선수”라고 칭찬했다.

감독은 혹시라도 경기에 영향을 줄까봐 최대한 훈련 때 배려를 해준다. 이런 배려가 자칫 베테랑을 게으르게 만들 수도 있지만 김해란은 스스로를 다그치며 실전 이상의 훈련을 통해 순발력과 판단력이 녹슬지 않게 만든다.

‘훈련은 실전처럼 실전은 훈련처럼’이란 말을 가장 잘 보여주는 선수다.

● 시즌 뒤 찾아올 김해란의 선택은

이런 꾸준한 노력 덕분에 1월27일 V리그 최초로 통산 9000디그를 달성했다. 이런 추세라면 통산 1만 디그도 멀지 않다. 아직 챔피언결정전 우승반지가 없다는 것이 아쉽지만 이번 시즌 흥국생명 유니폼을 입고 3번째 우승에 도전한다. 그는 도로공사 선수로 2005년 V리그 초대 챔피언결정전부터 시작해 2번 챔피언결정전에 나갔다. 2005년은 최강희 김세영 이효희의 인삼공사에 졌고 2005~2006시즌에는 김연경 황연주 이영주의 흥국생명에 졌다.

2014~2015시즌 IBK기업은행과의 챔피언결정전은 올스타전 때의 무릎부상으로 아예 출전조차 못했다.

1만 디그와 챔피언결정전 우승반지는 선수생활을 계속하기만 한다면 가능한 목표지만 김해란을 둘러싼 상황은 유동적이다. 그는 이번 시즌을 끝으로 흥국생명과의 FA계약이 만료된다.

3년 계약을 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김해란 자신이 “우선 2년만 한 뒤 재평가 받고 싶다”고 요청해 2+1년 계약이 만들어졌다. 박미희 감독도 구단도 김해란의 현재의 기량이라면 FA계약은 충분하다고 믿는다. 문제는 본인의 뜻이다.

그는 이번 시즌을 마친 뒤 중대한 결정을 내리려고 한다. 출산을 위해 선수생활을 포기하느냐의 여부다. 많은 배구관계자들은 아까운 기량을 포기하지 말라고 하지만 출산을 원하는 남편과 시댁어른들의 뜻도 생각해야 한다.

배구를 위해서라면 더 현역선수로 붙잡아 두고 싶은 마음이지만 김해란 개인의 행복과 선수생활 뒤의 오랜 인생도 생각해야 하기에 강요할 수는 없다. 그의 현역은퇴는 도쿄올림픽을 노리는 한국 여자배구에도 큰 손실이다.

이제 김해란에게는 6라운드 4경기와 끝을 알 수 없는 봄 배구 몇 경기만 남았다. 거창한 기록보다는 오늘의 경기를 위해 그저 눈앞의 수비에 최선을 다한다는 베테랑은 과연 시즌을 마친 뒤 어떤 결정을 내릴까.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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