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더러 보며 라켓 잡은 현이… 응원 해주세요, 결승 가야죠”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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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 vs 페더러 26일 4강전]정현 어머니 김영미 씨 인터뷰

“관중들이 일방적으로 현이를 응원했어요. 만원 관중이 현이에게 기립박수를 보내는 모습에 눈시울이 뜨거워졌어요. 밥 먹으러 멜버른 시내를 돌아다니면 이젠 제법 알아보는 사람이 늘었어요.”

호주오픈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정현(22·한국체대)이 현지에서도 뜨거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어머니 김영미 씨(49)는 25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호주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테니스 선수 출신인 정현의 아버지 정석진 씨(52)와 역시 테니스 선수인 정현의 형 정홍(25) 등 가족들이 함께 머물고 있다.

“결승 가야죠. 응원 더 많이 해주세요”라는 김 씨의 목소리는 밝기만 했다. 김 씨는 “한국에서 현이를 너무 예쁘게 봐주셔서 몸 둘 바를 모르겠다. 계속 잘 지켜봐 달라”고 말했다. 김 씨는 24일 8강전에서 정현이 테니스 샌드그런(미국)을 3-0으로 꺾은 뒤 중계 카메라를 향해 손으로 하트 모양을 그려 화제가 됐다. 그 얘기를 꺼냈더니 “관중들의 성원에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 감사 표시를 한 것이다. 보디랭귀지였다”며 웃었다. 그는 또 “뉴욕타임스에 내 하트 표시 기사가 실렸다고 한다. 큰 영광이다”고 말했다.

그동안 세계 테니스계는 신체 조건이 뛰어난 미국 유럽 호주 등 서구 선수들이 주름 잡았다. 이런 모습을 깨고 있는 정현에게 찬사가 쏟아졌다. 김 씨는 “동양의 어린 선수가 강한 상대를 맞아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게 잘하니까 좋은 평가를 해주고 있다. 현이의 정신력과 멘털을 높이 산다”며 “테니스 선수로 성공하기가 얼마나 힘든지를 알기 때문에 호주 사람들이 현이의 모습에 공감하는 것 같다”고 했다.

정현은 전 세계 1위 노바크 조코비치와의 16강전에서 이긴 뒤 중계 카메라에 ‘보고 있나’라는 사인을 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관중석에 있어서 그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는 김 씨는 “너무 놀랐다”며 과거 사연을 말했다. “현이가 속해 있던 삼성증권 팀이 해체되면서 큰 충격을 받았어요. 그 직전에 아시아경기 우승까지 했는데도 그런 일이 생기자 팀을 지키지 못했다며 마음고생을 크게 했죠. 김일순 감독님(여)과 윤용일 코치님을 위해 동료 선수들과 잘되면 뭔가 해보자고 약속을 한 거죠.”

정현의 유창한 영어 실력은 남편의 공이라고 했다. “애 아버지가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영어는 필수라는 말을 밥 먹듯 했어요. 언젠가 해외에 나갈 텐데 말을 못 하면 안 된다는 거죠. 영어 과외도 많이 시켰습니다. 지난해 말부터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인 네발 고드윈 코치와 다니면서 영어로 말하는 게 부쩍 늘었어요.”

이번 대회에서 정현은 강호들을 연파했다. 고비는 오히려 자신(58위)보다 랭킹이 낮은 샌드그런(97위)을 만난 8강전이었다고 했다. 김 씨는 “현이가 샌드그런을 ‘도깨비’라고 불렀어요. 희한하게 공을 치고 어떤 플레이가 나올지 예측하기 어려워서죠. 계속 잘하다 이렇게 엉뚱한 선수에게 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그 어느 때보다 긴장하며 코트에 나섰어요. 첫 서브 성공률을 높이는 데 주력했지요”라고 말했다. 어머니는 어느새 테니스 전문가가 돼 있었다.

김 씨는 물리치료사로 일했다. 남편 정 씨는 건국대와 대한항공에서 테니스 선수를 하다 20대 중반에 허리 부상으로 일찌감치 은퇴를 한 뒤 삼일공고 테니스 감독을 지냈다. 김 씨는 두 아들을 위해 마사지로 근육을 풀어주고 식단도 꼼꼼히 챙긴다. 김 씨는 “체력 소모가 많아 대회 기간에는 아미노산, 전해질 위주의 특수 음료를 마시게 한다. 도핑테스트 때문에 보약은 먹이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심리적인 부분도 챙긴다. 김 씨는 “가족끼리는 테니스 얘기나 경기 관련 화젯거리는 잘 꺼내지 않는다. 어렸을 때부터 편하게 해주려고 애썼다”고 말했다.

정현은 오래전부터 “엄마가 없었으면 여기까지 올 수 없었다. 나와 형이 아닌 다른 테니스 선수들 음식도 자식처럼 챙겨주시는 분이다”고 고마워했다.

정현은 26일 오후 5시 30분 ‘테니스 황제’로 불리는 로저 페더러(스위스)와 결승 진출을 다툰다. 김 씨는 “현이가 어릴 때 페더러 경기를 보면서 라켓을 잡았다. TV로나 보던 그런 선수와 처음 맞붙는 것 자체가 영광이다”고 설명했다. 김 씨는 “외국 기자들이 ‘정현 때문에 한국 테니스가 발전하게 됐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을 때 가슴이 뭉클했다”고 말했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정현#테니스#패더러#4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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